30년간 셰익스피어 번역한 최종철 “운문 번역은 일본으로부터의 ‘문화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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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주로 "사느냐 죽느냐"혹은 "사느냐 마느냐"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 "To be, or not to be"를 최종철(75)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번역했다.
산문 번역 일색이던 한국 셰익스피어 학계와 독자, 관객에게 "우리말 운문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것이 원작 대사의 음악성을 우리말로 살리는데 가장 적합하고 유효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최 명예교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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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맥베스’부터 음악·리듬 살린 운문 번역
30년의 번역 대장정 마무리…“삶을 바꿀 것”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주로 “사느냐 죽느냐”혹은 “사느냐 마느냐”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 “To be, or not to be”를 최종철(75)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번역했다. 이 문제적 대사뿐 아니다. 최 명예교수가 최근 내놓은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은 이전 대다수의 번역서와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번역해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애초에 영어 원문 기준 맥베스는 95%, 오셀로는 80%, 햄릿과 리어왕은 각각 75%의 운문으로 이뤄져 있어서다. 애초에 무대 공연을 위한 희곡으로 쓰인 만큼 말맛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시 3·4조 적용으로 음악성 살려
최 명예교수는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993년 ‘맥베스’로 처음 번역을 시작해서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번역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라면서 “괴롭기도 했지만, 셰익스피어의 시행들이 우리말 운율을 타고 춤출 때의 기쁨에 끌려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그의 번역은 셰익스피어 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강 오보격 무운시’ 형식을 한국 시의 기본 운율인 3·4조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영어에서 강세가 없는 음절 바로 다음에 강세가 있는 음절이 오는 것을 '약강'이라 하고, 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다섯 번 연달아 나타나면 '오보격'이라 한다. '무운'은 이어진 두 개의 시행 말미에 같은 음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희곡 대사에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했다.
산문 번역 일색이던 한국 셰익스피어 학계와 독자, 관객에게 “우리말 운문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것이 원작 대사의 음악성을 우리말로 살리는데 가장 적합하고 유효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최 명예교수의 말이다.
최 명예교수는 이번 셰익스피어 전집이 일본으로부터의 ‘문화 독립’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처음 한국에 번역되기 시작한 1920년대는 “일본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수입했고, 일본어는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라는 세 가지 형태의 글자가 혼재해 셰익스피어의 운문을 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이제 일본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한글로 셰익스피어를 읽어도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과 사상이 리드미컬하게 전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백견이 불여일청”이라면서 자신의 번역본을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이 삶을 바꾼다”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여러 논문을 쓴 최 명예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인간 내면의 갈등, 또 감정의 진실에 가장 접근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맥베스’가 최근 판매량이 훌쩍 뛰는 현상을 목격했다면서 “이 작품이 오늘날 정치 상황과도 닮아있다는 이유에서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시대와 인종, 국경을 초월해서 인간 사회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를 읽은 사람은 읽지 않은 사람과는 다르다. 읽은 후의 삶은 그전에 비해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언했다.
최 명예교수의 스승인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도 201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운문으로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을 냈다. 이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10년의 세월을 여기에 바쳤다. 최 명예교수는 스승의 3배의 시간을 쓴 셈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글이 밀도가 워낙 높아 한번이 아니라 30년에 걸쳐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10~15년 후에 머리가 어느 정도 돌아가면 (전집의) 개정판을 낼 계획”이라는 계획도 이 자리에서 밝혔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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