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의 흔적, 심리부검 [유레카]

황보연 기자 2024. 9. 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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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은 주검을 해부하고 장기의 상태 등을 살펴 사망 원인을 확인하는 일을 말한다.

전세계 최초의 부검은 14세기 초 이탈리아 의사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적 의미의 심리부검은 유족·지인의 진술과 고인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자살 사망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추정하는 데 쓰인다.

미국 철도국이 철로에서 발생하는 자살 사망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선 것도 심리부검 결과가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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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은 주검을 해부하고 장기의 상태 등을 살펴 사망 원인을 확인하는 일을 말한다. 전세계 최초의 부검은 14세기 초 이탈리아 의사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에게서 받은 육체를 온전히 신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부검은 큰 사건이었다. 이에 견주면 심리부검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 연쇄적으로 93명의 경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조사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만 해도 심리부검의 목적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혹은 사고사인지를 판별하는 데 무게를 뒀다. 현대적 의미의 심리부검은 유족·지인의 진술과 고인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자살 사망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추정하는 데 쓰인다.

핀란드는 일찌감치 국가 차원에서 심리부검을 도입했다. 1987년 4월부터 1988년 3월까지 자살로 숨진 1397명에 대한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자살 사망자의 80% 이상이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지만 이 중 15%만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핀란드는 1991년부터 일반 외래 환자도 혈압이나 혈당을 재듯이 우울증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1990년 30명이던 핀란드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020년 12.9명으로 떨어졌다. 미국 철도국이 철로에서 발생하는 자살 사망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선 것도 심리부검 결과가 토대가 됐다. 사망 직전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 대신 철로 주변에 긴급 전화기를 설치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연락처를 남겼다.(‘심리부검’, 서종한)

국내에선 군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이 심리부검을 촉발시켰다. 2008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안에 의사와 심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심리부검소위원회가 설치됐다. 유족이 제출한 진정 사건 가운데 60%가 자살 사건이었던 영향이다. 2015년부터는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심리부검 분석 결과를 발표한다. 사별 뒤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3년 이내에 고인의 가족(배우자·부모·형제·자녀 등)과 친구를 면담한다.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으면, 고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지난 달 28일 복지부가 발표한 심리부검 분석 결과(2015~2023년)를 보면, 자살 사망자들은 평균 4.3개의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다. 청년들은 실업과 구직 스트레스를, 장년층은 직장동료와의 관계 문제와 사업부진, 빚에 시달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96.6%는 죽기 전 위험 신호를 보였으나 이를 주변에서 알아차린 비중은 23.8%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2년 기준 25.2명에 이른다. 2012년 28.1명에 견주면 감소 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자살 예방책 수준이 아닌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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