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월 100만원? 尹 정부는 왜 폭주기관차 됐나

이지원 기자 2024. 9. 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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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외국인 노동자 비틀어진 경제학❷
저출생 대책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시작 전부터 엑셀 밟아
내년 상반기 1200명 규모 본사업
최저임금 적용 배제 주장 계속해
홍콩 방식 한국 도입 어려운 이유
‘함께 거주’ 꺼리는 가정 많아…
체류비 부담 커지면 노동자 이탈 우려
저출생 근본 해결책은 일‧가정 양립
정부, 양육 가정 마음 왜 못 읽나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는 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진=뉴시스, 더스쿠프 포토]

# 정부가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6개월간의 여정이 오늘 시작한다. 지난 8월 한국에 입국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서울 시내 157개 가정에 배치된다. 1년여의 짧은 준비기간 탓에 출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시범사업의 결과를 면밀히 평가해 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 문제는 정부가 시범사업 시작 전부터 '엑셀'을 밟아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상반기 1200명 규모의 본사업'을 시작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그 사이 여당을 중심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겐 최저임금제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아 일반 가정이 이용하기에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 이런 주장의 선봉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다. 오 시장은 '홍콩처럼' 100만원대 이용 가능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홍콩의 방식은 '해답'일까. 더스쿠프 視리즈 '외국인 노동자 비틀어진 경제학' 2편에서 답을 찾아보자.

저출생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결국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사진=연합뉴스]

우리는 視리즈 '외국인 노동자 비틀어진 경제학' 1편에서 홍콩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1970년대 경제 성장기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한 홍콩에선 월 80만원에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금액'만으로 비교할 순 없다.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관리사와 함께 거주하는 게 원칙이다. 이 때문에 주택을 설계할 때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위한 주거 공간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 아울러 식비와 교통비, 의료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체류비가 줄어든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버는 돈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다.

홍콩 가사관리사 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이용가정과 개별계약을 맺고 일하기 때문에 각종 부조리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들을 덮어둔 채 "홍콩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 비틀어진 경제학' 2편에선 이런 문제들을 살펴보자.

■ 관점 한국의 자화상 = 언급했듯 한국의 가정과 홍콩의 가정은 특성과 환경, 니즈가 모두 다르다. 실제로 한국 가정의 경우 홍콩과 같은 '입주제'보다 '출퇴근제' '시간제' 가사관리사를 선호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 25~4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 조사(2024년)' 결과를 보자. "가사관리사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61.4%였는데, 이들은 자녀의 하교를 지원하는 '시간제 가사관리사(70.0%·이하 복수응답)'를 가장 선호했다. '출퇴근을 전제로 한 전일제'를 선호하는 비중은 41.8%였고, '입주 전일제'를 선호하는 이들은 4.5%에 그쳤다. 홍콩처럼 함께 거주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선호하는 수요는 많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월 100만원대 급여를 받으면서 한국 체류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서울시가 역삼동에 마련한 공동숙소에서 지낸다.

4.8㎡~6.5㎡(약 1~2평)에 불과한 원룸텔로 월 주거비만 45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공동숙소를 떠나 별도의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올해 7월 기준 서울 원룸(33㎡ 이하) 평균 월세가 73만원(보증금 1000만원 기준·다방)에 달해서다.

여기에 식사비·교통비 등을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두고 '100만원만 지불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현행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본국에 송금하고, 서울의 주거비·생활비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체류비 부담이 커지면 이들이 급여가 더 높은 다른 직종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관점 폭주기관차의 질주 = 그럼에도 여당을 중심으로 '홍콩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경원(국민의힘) 의원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확대를 위해 사적계약을 통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업종별·지역별 차등을 통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 단기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적용 제외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시범사업 결과를 면밀히 검토한 후 제도를 가다듬어야 할 정부가 폭주기관차처럼 '경적'만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역동경제로드맵'엔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유학생과 외국인 근로자의 배우자에게 가사·돌봄 노동을 허용하도록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 시장이 주장한 현행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 예외 조항'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정부가 나서서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100만원만 지불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고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어렵게 만든다.[사진=뉴시스]

말 많고 탈 많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이 제도의 목표는 결국 '저출생 해결'이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성공사례처럼 보이는 홍콩에서조차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13명이던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0.77명으로 하락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0.72명·2023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내 아이를 직접 돌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읽지 못한 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아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출생 문제에 있어서 최우선은 '일‧가정 양립'이다"면서 말을 이었다. "저렴한 금액에 자녀를 봐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한들 누가 낳겠는가. 결국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봐야 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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