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학교 초토화…조주빈 하나 징역 20년 선고하고 끝낸 결과"(종합)
이수정 "n번방 몇 명 처벌하고 수사 마무리한 게 실수"
"현재도 교육하지만 실효성 낮아…부모 조기교육 필요"
위장수사 '사전승인' 요건 없애고 범의유발 허용 주장도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최근 '딥페이크'를 악용한 음란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현장 전문가들이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경직된 법 개정과 예방교육 내실화를 주문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딥페이크 디지털성범죄 예방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사진이나 영상을 다른 사진이나 영상에 겹쳐서 실제처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합성기술인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가 최근 들어 급증하면서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위해 열렸다.
특히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딥페이크 영상물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의 약 75%가 10대로 나타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범죄의 저연령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n번방' 가해자 몇 명을 엄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한 게 실수였다"는 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표현했다.
그는 "지난 2019년 n번방 사건 때도 딥페이크는 있었고, 이를 과연 피해로 봐야 하는지 문제가 제기됐지만 많은 분들이 '창작의 자유'라는 단어를 쓰면서 굉장히 많은 비난을 했다"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 n번방의 2만명이 10배 늘어 22만명이 이 추세에 적극적으로 가담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여가부 청소년 보호위원장을 하면서 목격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매달 저희들이 300개에서 400개 정도의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정부는 어디서 아동들이 '그루밍' 돼 성폭력 피해자가 되고 영상이 촬영되고 유포되는지 알고 있다"며 "문제는 여가부가 처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모니터링 후 권고하거나 수사의뢰하는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문제의 앱들은 모두 영상채팅앱 형태를 띄고 있고, 몇 분 이상 영상채팅을 하는 경우 여성 이용자에게 쿠폰이나 게임 아이템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앱이나 사이트들이 영리적인 목적을 취한 결과, 해당 미성년자들은 처참히 성폭력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 벌건 대낮에도 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조주빈으로 대표되는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제작 유포 사건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가해자 조주빈 하나만 징역 20년 선고하고 끝난 결과가 바로 초중고가 초토화되고 선생님들이 교단에 서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서비스법'을 제정해 올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사회 안전에 위협되는 서비스를 제공해선 안 되고, 사용자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어길 시에는 최대 6%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최근 텔레그램의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EU의 디지털 관련 법 제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프랑스는 '정보조작대처법'을 제정해 해외에 기반을 둔 서비스가 허위정보 유포로 프랑스의 기본 이익을 해치는 경우 시청각최고심의회(CSA)에 의해 서비스 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할 수 있다.
영국은 '온라인 안전법'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공유하는 것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것은 물론, 플랫폼 운영자에게 불법 콘텐츠가 유포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만일 이를 위반할 시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피해자들에게 업체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또 현행 법상 미성년자 대상 성착취물 등 부분적으로만 허용돼 있는 함정 혹은 위장수사 제도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률에 너무 많은 허들이 있다. 법률을 손질하지 않으면 결국 지금처럼 처벌은 하되 처벌이 아닌 시스템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며 "외국의 경우 아동 음란물에 대해서는 함정수사를 느슨하게 허용하는데, 우리나라도 광범위하게 함정수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함영욱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장 역시 위장수사 제도를 활성화하고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도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함 과장은 "야간이나 공휴일에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텔레그램방 등을 발견했음에도, 현행 제도 상 신분비공개수사(경찰관임을 밝히지 않는 것)에는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승인을 받는 사이 방이 폭파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전승인을 받지 않더라도 신속히 비공개 수사가 개시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예방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지현 서울시 여성가족실 양성평등담당관 권익사업팀장은 "가해자들 대부분이 10대 때부터 가담하는데, 장난이나 호기심으로 시작해 성인이 되면 기술발달로 (범죄행위가) 더욱 발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고 했다.
정진권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장은 "매년 학교폭력이나 생명존중, 성교육, 디지털범죄 예방 교육을 수십 시간씩하지만 근본적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저희도 이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과장은 "요즘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이 SNS를 접하고 있는 실정이라 부모님들이 디지털 윤리 교육 등을 조기에 교육하면 훨씬 더 좋은 교육 효과를 올리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가치 교육 없이 기술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짚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유달리 성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초등학교 때도 코딩교육을 하는데, 예를 들어 코딩으로 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이 무엇인지 예방적 차원에서 교육을 하지 않고 기술만 전달한다. 기술교육 과정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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