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해 대신 일본해만 표기해달라”…국제 학술대회 보이콧한 日지질학계
동해 표기법 두고 韓日 학계 갈등
동해·일본해 병기제안했으나 日 거절
일본 연구자들이 동해 표기를 문제 삼아 부산에서 열린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 대거 불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측은 동해를 일본해로만 표기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관철되지 않자 사실상 행사를 보이콧했다.
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지난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IGC 2024에 참석한 일본 연구자는 90명 수준에 그쳤다. 일본 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열린 행사에는 매년 500여명 참석했다. 이번에는 가까운 한국에서 열렸음에도 참석자가 확 줄어든 것이다.
세계지질과학총회는 지질학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학술대회다. 올림픽과 같이 4년마다 열려 ‘지질 올림픽’이라고 불린다. 부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는 121개국 지질학 연구자 7000여명이 참가했다.
일본 학자들의 대규모 불참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을 놓고 불거진 갈등 탓이었다. IGC 2024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정대교 강원대 교수는 “행사를 준비하며 1년 넘게 일본 학계와 동해 표기 문제를 두고 협상했으나 끝내 결렬됐다”며 “정치적인 갈등이 학계에서 표출된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은 201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위원회에서 독일, 러시아, 튀르키예와 경쟁 끝에 올해 IGC 행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 행사 개최국이 인도로 정해졌던 만큼 한국은 지역 배분에서 불리한 입장이었지만, 한·중·일 지질자원 연구기관 국제회의인 ‘한·중·일 지오써밋’, 아시아 지역 지구과학 국제기구인 ‘아시아지질자원위원회’ 같은 협력 모델이 있었던 것이 큰 힘이 됐다.
행사 유치는 일본이 한국을 도왔지만 개최 준비 과정에서 공식 자료와 발표 세션 명칭에 동해를 어떻게 표기할지를 두고는 갈등이 불거졌다. 한국 지질학계로 구성된 IGC2024 준비위원회는 공식 표기로 동해(East Sea)를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일본 학계는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준비위는 나중에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제 학계에서는 두 표기법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관례인 만큼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 한일 지질학계는 수차례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국은 무산됐다. 일본 학계가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수한 탓이다.
정 교수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일본 지질학회와 지질조사소를 방문해 협의를 했으나 끝내 입장 차를 좁힐 수 없었다”며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행사를 보이콧하겠다는 의사를 은근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일본 지구과학연합은 작년 말 홈페이지를 통해 “지명 표기 문제로 한국에서 열리는 IGC에 참석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는 공지문을 올리며 일본 학계의 보이콧을 유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행사에 참석한 일본 연구자 규모는 예상치에 한참 못 미쳤다. 정 교수는 “정부 연구기관이나 정부 연구비를 지원 받는 연구자는 대부분 불참했고, 은퇴한 연구자나 기업 소속 연구자들 위주로 참석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지질학계는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적 갈등이 학계에 까지 번진 사례로 본다. 지질학 분야의 한 연구자는 “한국도 일본해 표기에 대해 민감하지만, 학문적인 논의를 위해 병기를 제안해 한 발 물러선 것”이라며 “앞으로 학문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정치적 중립을 위한 과학계의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 행사 보이콧을 선언한 나라는 또 있다. 러시아 지질학계는 소속 국가 변경 권고에 반발하며 성명을 내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2022년 국제지질과학연맹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벌인 러시아 출신 과학자들의 학회 활동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부산 IGC 준비위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러시아 연구자들에게 다른 국가 소속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다만 부산 IGC 준비위는 실제로 러시아 과학자들의 참석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아 일부 러시아 과학자들이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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