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이 ‘쇼잉’만 하다 임기 마치는 까닭은 [아침햇발]
이춘재 | 논설위원
6일 열리는 ‘김건희 명품백’ 사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김 여사 불기소를 권고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수심위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고 기소를 권고한 것은 올해 초 ‘이태원 참사’의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유일하다. 유가족을 대리한 법률 전문가의 참석이 주효했다. 민변 이태원 참사 법률지원단을 이끈 윤복남 변호사가 검찰의 불기소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 것에 심의위원들이 공감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수심위는 상황이 다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김 여사 변호인 등 오로지 무혐의를 주장하는 법률 전문가만 참석한다. 기소 의견을 들으려면 피해자가 참석해야 하는데, 이런 뇌물 사건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 수심위가 김 여사 기소를 주장하는 최재영 목사를 부르더라도, 비법률가인 그가 수사팀을 상대하기는 버겁다. 수심위가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다.
13일 퇴임하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이번 수심위 직권 소집이 ‘쇼잉’(그저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으로 보이는 이유다. 수심위 업무를 총괄하는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낸 그는 누구보다 수심위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의 속내는 수심위를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지난 8월23일 대검 발표에도 그 속내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소모적 논란이 지속되는 이 사건에서 수심위 절차를 거쳐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의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 ‘증거 판단’과 ‘법리 해석’, ‘소모적 논란’이란 말 속에 이 총장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가 보기엔 수사팀이 선택한 증거와 법리 해석이 전적으로 옳다. 따라서 김 여사의 다른 뇌물 범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은 그에게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이 총장은 앞서 ‘이태원 참사’ 수심위 덕을 톡톡히 봤다. 수사팀의 불기소 결론을 마치 그가 수심위를 통해 기소로 바꾼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상은 다르다. 서울서부지검은 이미 지난해 4월 김광호 청장을 구속하겠다고 대검에 보고했다. 이 총장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신병 확보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보완’ 지시를 내렸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서 뭘 더 보완하라는 말인가. 이런 지시는 그냥 구속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이해한 서울서부지검은 한달 뒤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총장은 이마저도 반대했다. 기소하지 말라는 뜻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지검장을 포함해 수사팀이 바뀐 뒤 이번에는 불기소하겠다고 보고하자, 이 총장은 수심위를 소집했다. 아마도 수심위가 불기소를 권고할 것으로 예상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앞서 한 행동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 총장은 지난 4·10 총선에서 여당이 기록적 참패를 당한 뒤 명품백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11월 터진 이 사건에 대해 그는 총선 전까지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명품백 수사 지시 후 ‘법불아귀’ ‘법 앞에 성역도, 특혜도 없다’는 말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정권 눈치만 보다 검찰을 망가뜨린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용산에서 명품백 수사 지휘부를 해체해버리자, ‘7초 침묵’으로 사표를 대신했다. 그의 선배들은 이런 부당한 인사에 대부분 사표로 저항했었다. 용산 앞에선 고개도 제대로 못 들면서 야당엔 눈을 부라린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탄핵안을 발의하자 대검 간부들을 병풍처럼 뒤에 세워놓고 “위헌이자 사법 방해”, “직권남용 및 명예훼손 수사 검토” 등 날 선 말들을 쏟아냈다.
명품백 수사팀이 김 여사 소환조사를 지시한 그를 패싱하고 ‘출장조사’를 감행한 건 이런 속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이 결국 용산 뜻에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검사들은 잘 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체제에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검찰을 다룰 줄 아는 대통령 밑에서 검찰총장이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 방법은 쇼잉밖에 없을지 모른다. ‘성역 없는 수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이 바뀌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누구인가. 레임덕 정권이 검찰에 어떻게 당하는지 직접 해봐서 잘 아는 그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의 고삐를 더욱 바싹 쥐려고 할 것이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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