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팬들의 반려 가수”…데뷔 20년 윤하, 이번엔 바닷속 탐험

이정국 기자 2024. 9. 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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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정규 앨범 ‘그로스 시어리’ 발표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윤하. C9엔터테인먼트 제공

“윤하는 단 한번의 쉼도 없이 끊임없이 노래했다.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그의 여정은 노력하는 천재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서사를 담고 있다. 양산형 음악으로 가득한 요즘 음악에 자신이 꿈꾸거나 이루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소중한 드라마를 가진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조혜림 프리즘 음악콘텐츠 기획자는 윤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윤하는 쇼트폼이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긴 호흡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앨범 형태로 발표하는 드문 가수다. 이런 뚝심은 지난 앨범 ‘엔드 시어리’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 신화로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 일본에서 16살에 데뷔해 싱어송라이터로 20년간 음악을 해온 윤하가 지난 1일 일곱번째 정규 앨범 ‘그로스 시어리’로 돌아왔다.

“속이 시원하다. 친구를 출산한 느낌이다.”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하는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2년10개월 만의 새 앨범 역시 소재는 과학이다. 그는 과학 관련 영상을 탐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 관련 영상만 보니 내 주변에 온통 그런 영상만 뜬다. 알고리즘형 인간이 된 거 같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윤하. C9엔터테인먼트 제공

전 앨범에선 ‘사건의 지평선’처럼 시선이 우주로 향했다면, 이번에는 생물이다. 특히 바닷속 생물에 관심이 꽂혔다. 윤하를 대변하는 작은 소녀와, 타이틀곡 제목이기도 한 ‘태양물고기’(개복치)가 요트를 타고 전세계 바다를 여행하는 콘셉트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때 맹그로브 나무를 보면서 앨범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번째 트랙 제목이 ‘맹그로브’다. 수록된 10곡 모두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다.

왜 하필 개복치에 빠진 걸까. “나약한 생물로 알려져 있는데, 공부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수명도 20년 정도로 꽤 길고 수면에서 해저 800m까지 내려가는 등 활동 범위가 넓은 물고기였다. 수면도 아니고 해저도 아닌,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이 와 닿았다.”

노래는 “아무리 마음을 먹어봐도 왠지/ 어디서 잘못된 건지/ 막막하기만 해/ 어쩌면 보여진 내 모습이/ 전부는 아닐까 두려워”라며 망망대해에 떠있는 듯한 외로움을 표현한다. ‘사건의 지평선’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긴 클라이맥스가 듣는 쾌감을 자아낸다. “과학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결코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라며 윤하는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하의 일곱번째 앨범 ‘그로스 시어리’ 표지. C9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렇게까지 콘셉트를 궁리해 자신만의 철학을 투영하는 음악을 20년간 해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윤하는 그 동력을 “팬에 대한 부채의식”이라고 설명했다. “팬들의 사랑에 계속 보답해야 한다. 이게 내 팔자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도 다시 힘을 준 건 팬들의 사랑이었다.”

실제 윤하는 2012년 네번째 앨범 ‘슈퍼소닉’을 발표한 뒤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당시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자신의 회사를 세운 뒤 앨범을 냈지만 경영난으로 인수합병 등을 거치며 회사가 와해됐다. “그렇게 혼자였던 적이 처음이었던 거 같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 만들어 준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던 중 아파트를 사게 됐는데 “어느 날 바닥 타일 하나, 문고리 하나가 다 팬들이 나한테 사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고 그는 떠올렸다. 자신을 팬들의 “반려 가수”라고 칭한 윤하는 “팬들이 포기 안 하고 잘 키워주셔서 지금의 앨범도 나올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윤하. C9엔터테인먼트 제공

록 음악에 대한 애정도 여전히 드러냈다. 선배들이 “발라드 하라”며 만류도 했지만, 이번 앨범을 포함해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록이다. ‘사건의 지평선’이 성공하는 걸 보고 더욱 힘을 얻었다. 그는 최근 재결합한 밴드 오아시스를 거론하며 “집에 있는 오아시스 시디(CD)를 다시 꺼내 틀어놓고 다 따라 불렀다”고 했다. “데이식스나 큐더블유이알(QWER)만 봐도 이제 밴드 음악이 주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적어도 록이 서브컬처는 아닌 거 같다. 틱톡 같은 쇼트폼에서 댄서블한 일본 록 밴드 음악들이 많이 사용된 것도 하나의 인기 원인이라고 본다.” 그는 “언젠가는 재즈를 제대로 시도해보고 싶다”는 구상도 밝혔다. 사실 이번 앨범에도 재즈와 켈틱 음악 요소를 넣었다.

음악인으로서 최종 목표는 뭘까. 그는 “조용필 선배님처럼 50년 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조만간 찾아뵙고 비결을 여쭤보고 싶다”며 “팬들하고 간장게장 메뉴로 디너쇼 할 때까지 음악 하겠다고 이미 약속을 했다”고 말한 뒤 활짝 웃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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