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진’ 국민연금, 퇴직연금에도 ‘메스’ 댈까

조문희 기자 2024. 9. 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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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도 공적연금처럼”…국민연금, 퇴직연금 시장 진출하나
수익률 제고 기대되지만 업계 “민간시장 위축된다” 반발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윤석열 정부 주도로 연금 개혁 논의에 불이 붙으면서 퇴직연금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고령화로 인한 공적연금 기금 고갈 문제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가 불가피해진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연금 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혁안으로는 퇴직연금 의무화와 함께 수익률 제고 방안이 거론된다. 퇴직연금 가입 의무를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운용을 맡겨 수익률을 높이자는 취지다. 다만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에 공적연금이 개입하는 셈이라, 관련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업계 반발도 만만찮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시민들이 연금 상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퇴직연금 단계적 의무화, 수익률 제고 추진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4일 발표할 연금개혁 정부안에 퇴직연금을 전 사업장에 의무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7월3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서도 퇴직연금의 단계적 의무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강제성을 띄게 한다는 구상이다.

퇴직연금은 기업이 근로자의 급여 일부분을 민간 금융기관에 위탁해 운용하게 하는 일종의 금융 상품이다. 투자 상품과 비율을 가입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적립금이 외부에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파산해도 근로자는 안정적으로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가입률은 저조한 편이다. 2005년 관련 제도 첫 도입 이후 현재까지 20년이 흘렀으나, 2022년 기준 전체 사업장 중 퇴직연금 도입률은 26.8%에 그쳤다.

당국은 퇴직연금 의무화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익률 제고도 동시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퇴직연금의 연환산 수익률은 최근 5년 평균 2.35%에 불과하다. 국민연금(6.86%)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지난 5월에는 18년 만에 자산배분 체계를 개편해 위험자산 투자비중을 65%까지 높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3.59% 수익률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1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공단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자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연금에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하면, 공단의 공격적 투자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복수의 정부부처도 해당 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국민연금 시장 진출 능사 아냐"…"규제 제거가 우선"

그러나 업계 반발이 만만찮은 점이 변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방안과 관련해 "극약처방"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퇴직연금을 운용하던 40개 민간 사업자들이 국민연금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오히려 국민연금 고갈을 늦추려는 목적으로 퇴직연금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자정 작용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규제 요인을 제거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표적으로는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재설계가 거론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미리 설정해둔 옵션에 맞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장치다. 다만 디폴트옵션 시 자동으로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도록 설계된 미국‧호주 등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한 6~7개 옵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짜여있다. 그렇다보니 가입자의 90% 가량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퇴직연금의 구조 자체가 수익률을 높일 수 없게끔 설계돼있다는 얘기다.

김병철 에프앤가이드 퇴직연금 사업부 대표는 "국민연금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자는 주장은 중간 단계를 많이 건너 뛴 조치"라며 "퇴직연금 사업자의 손발을 다 묶어놨는데 좋은 수익률이 어떻게 나겠나. 퇴직연금 규제를 먼저 풀어서 공격적이고 책임 있는 자산운용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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