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할수록 '먹거리 보장'은 더욱 절실해진다
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비상이다. 농산물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무더위에 허덕인 것으로도 모자라 국민은 위기의 밥상물가 앞에 망연자실할 판이다. 국민이 묻는다. 이 정부는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땜질 처방에 수수방관이 특기냐고. 정녕 '모두가 못 사는 나라'로 치달을 것인가. 왜 한국이 세계에서 농산물 가격이 가장 비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한국이 왜 국민 행복 순위는 52위인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기본식료사회를 제안한다.
8월 한 달 동안 배추가격이 고공 행진하더니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10㎏ 한 상자에 1만 원 하던 청양고추는 12만 원, 시금치는 한 단에 1만 원을 훌쩍 넘었다. 경매로 농산물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 때문에 물량이 부족하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중간 유통인들이 시장 시그널을 읽고 물량을 조절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가격을 잡기란 어렵다. 시장실패가 곧 정부실패로 귀결되는 유통구조를 방치한 결과이다.
국민 행복 순위 50위권의 나라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에게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인프라를 확장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국가의 필수적인 책무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가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34조 1항을 통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국민의 권리를 국가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가 발표한 <2024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4)>에 따르면, 조사한 143개국 중 한국의 행복순위(2021~2023년 3년 평균)는 젊은 층(30세 미만)에서는 52위, 고령층(60세 이상)에서는 59위로 나타났다. 평가 항목은 1인당 GDP(GDP per capita),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 기대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선택의 자유(Freedom to Make Life Choices), 관용(Generosity), 부정부패 인식도(Perceptions of Corruption), 총 6가지다. 이들 항목 중 경제적인 부분과 사회・정치적 부분 간의 불균형과 함께 사회・정치적 항목들이 우리 국민의 행복도를 하락시키고 있다.
농산물 가격과 국민 행복도의 상관관계는?
세계에서 농산물 가격이 가장 비싸게 나타난 한국. 국민의 행복도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는 농산물 가격 안정화일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하면, 이로 인한 불확실성과 스트레스가 국민의 불안과 우울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특히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소비자 가계에 큰 부담이 된다. 저소득층은 물론, 소득이 고정된 노인층, 대가족 및 다자녀 가정 등은 재정에 더 큰 타격을 입는다. 농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소규모 음식점, 전통시장 상인 등 소상공인들도 직접적으로 원가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영업 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수요 감소로 이어져 결국 폐업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행복도 평가 주요 항목들과 연계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농산물 가격 안정은 국민 행복도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첫째, '1인당 GDP'와 관련, 구매력을 높여 GDP 상승에 기여할 수 있다. 농산물 가격 안정은 식비 부담을 줄여줘 구매 여력을 창출한다. 또 식품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장기적인 가계 계획 수립이 수월해진다. 남은 자금을 저축하거나 여가, 취미 등 삶의 질 향상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경제적 안정성을 높여 전반적인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둘째, '기대수명'을 연장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안정적인 농산물 가격은 접근 가능한 식품의 품질을 보장하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선택의 자유'를 확장해 준다. 농산물 가격 안정은 식품 구매에 있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가족의 건강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넷째, '사회적 지원'이 촉진된다.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지역 농업과 소규모 농민들이 지원을 받게 되고, 지역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가 강화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시스템까지 마련된다면 서로에 대한 지원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게 된다. 다섯째, '관용'을 촉진하고 '부정부패 인식도'를 감소시킨다. 농산물 가격의 안정과 투명성은 정부와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가격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은 부정부패 인식을 감소시키고, 국민의 관용도 촉진할 수 있게 된다. 농산물 가격 안정은 모든 사회 계층에 걸쳐 평등한 식품 접근권을 보장하여 사회적 통합에도 기여한다.
절실한 먹거리 기본권 보장
따라서 역설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할수록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 더욱 절실하다. 행복도를 높이는 길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활 만족도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필수 요소가 된다. 농산물 가격이 오를수록 가계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가처분 소득 감소와 함께 생활비에 대한 압박이 커진다. 먹거리 기본권이 보장되면, 식품 가격 급등에 따른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는 한편, 가계의 경제적 안정성을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비용 문제로 영양가 높은 식품 섭취가 감소하는 저소득층의 영양 불균형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이는 곧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완화하며, 모든 사회 계층에 걸쳐 식품 접근성을 평등하게 만들어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방편이다.
먹거리 기본권 보장은 식품 공급망의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가격 불안정성에 대응하여 생산자와 계약재배를 늘림으로써 소비자에게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하는 공공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지역별, 분야별, 계층별 주요 농산물 수요조사를 통해 필요한 농산물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으며, 농산물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먹거리 기본권 보장은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에 따른 여러 위험을 완화하고, 국민의 행복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에게 안정적인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먹거리 기본권 보장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들이 많다. 미국은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SNAP)을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 가정에 전자카드를 지급, 식품 구매 비용을 지원하여 영양상태를 개선하고 식량 안정성을 향상시키며 경제 활동도 촉진시킨다. 캐나다는 북캐나다 영양지원(Nutrition North Canada, NNC)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극지방과 오지의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한 식품을 공급한다. 식품 운송비 보조를 통해 비용 문제로 인한 식품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사회의 건강도 개선한다. 브라질의 포미 제루(Fome Zero, 영어로 ‘Zero Hunger’의 의미)는 학교 급식 프로그램, 가족 농장에 대한 지원, 식료품 카드 및 식품은행 네트워크를 포함한 식량 안보 및 사회적 포용 프로그램이다. 인도의 공공유통시스템(Public Distribution System, PDS)은 저소득층 가구에게 쌀, 밀, 설탕 등의 기본 식품을 보조 가격으로 제공한다. 다수의 저소득 가구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식품 가격 변동에 대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제 기본식료사회를 논의하자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농산물 가격 안정을 촉진하고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기본식료사회시스템'이다. 국민의 먹거리 접근성과 농산물 가격 안정성을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국민의 건강, 경제적 안정성, 그리고 전반적인 행복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책 도구이다. 유럽연합의 공통 농업 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도 기본식료시스템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CAP는 유럽연합 회원국의 농업을 지원하고 농산물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농민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제공하고, 품질 관리와 환경 보호를 강화하여 유럽 내 식품 공급의 안정성과 품질을 유지한다.
기본식료사회시스템이 작동하면 이로운 점은 첫째, 정부는 생산원가공개 프로그램, 생산자-소비자 가격결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와 생산 및 유통지원 체계를 마련하여 필수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게 된다. 둘째,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학교급식, 공공급식, 군대급식, 경로급식 등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단체 급식을 포함, 저소득층 가정에 고품질 식품을 제공하는 영양플러스 사업 등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 계약재배에 대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셋째, 누구나 지역 마켓이나 농산물 시장에서 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식품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본식료바우처를 제공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지역 농민들도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농업을 경영할 수 있게 된다.
기본식료사회시스템은 국민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전반적인 국민 행복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핵심 요소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사회적 대화도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관계자 간의 광범위한 협력과 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식료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통합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가 필요하다. 우선 생산자, 소비자, 유통인, 비정부기구(NGO), 정부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식료 정책, 가격 안정화 방안, 지속 가능한 농업 방향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정책 제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후 정기적으로 공개 간담회와 워크숍을 개최하여, 기본식료사회시스템 관련 정책 설계와 실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 차원에서 소규모 그룹을 조직하여 시스템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기후농부네트워크, 직거래공동체, 마을부엌, 식품공유 프로그램, 인식 제고 캠페인 및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지역에 맞는 기본식료사회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정책의 효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지속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정책을 유연하게 수정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대화를 통한 기본식료사회 정책들은 이 시스템의 설계와 실행을 다각적으로 지원하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먹거리 접근성을 개선하고 행복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못 사는 나라'로 가고 있는 양극화 불평등 경제에서 국민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대안 정책이 기본식료사회 구축이다. 여기에는 각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폭넓게 공유함으로써 보다 균형 잡힌 정책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청양고추 한 상자가 1만 원에서 12만 원까지 치솟는 위기의 밥상물가 시대에 기본식료사회 구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꾸릴 것을 제안한다.
[백혜숙 공공식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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