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독·프 어디에도 ‘하나의 검찰’은 없다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는 6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소집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려 검찰 결론의 타당성을 심의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령 검찰과 다른 결론을 내리더라도 강제력은 없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이 사건을 수사 중입니다. 공수처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만약 공수처가 김 여사의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기소 여부는 다시 검찰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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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 사건, 검찰이 불기소하면 그만? 미국은 다르다
검찰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대신 기소할 수 있는 다른 기관이 있다면 검찰도 전횡을 일삼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현실과 대조되는 상황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30일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2016년 대선 당시 과거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입막음용으로 회삿돈 13만달러(약 1억6900만원)를 포르노 배우에게 준 뒤 이를 ‘법률 비용’으로 거짓 회계 처리했다는 게 혐의 내용입니다.
애초 이 사건은 연방 검찰과 뉴욕주 맨해튼 검찰이 동시에 수사에 나섰습니다. 2018년 뉴욕을 관할하는 연방 검사가 연방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하자, 맨해튼 검찰은 연방 검찰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며 일단 수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연방 검찰이 수사 중단 방침을 밝히자, 맨해튼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연방 검찰은 최종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 반면 맨해튼 검찰은 수사를 이어간 끝에 결국 트럼프를 기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연방 검찰과 뉴욕주 맨해튼 검찰의 결론이 엇갈린 배경을 두고 ‘연방선거법보다 뉴욕주 형법상 회계부정 처벌 조항이 입증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사 의지였겠지요. 연방 법무부 장관이 트럼프 기소에 부정적이어서 그 지휘·감독을 받는 연방 검찰이 기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이와 달리, 선거로 선출된 맨해튼 검사는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오히려 트럼프 기소에 긍정적인 뉴욕 시민들의 지지를 업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방-주 검찰로 이원화, 주 검찰은 지역별 ‘자치’ 체제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하나의 검찰’이 아니라 ‘여러 검찰’이 존재하는 미국의 검찰 제도입니다. 기소 여부를 ‘하나의 검찰’이 독점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우선 미국 검찰은 크게 연방과 주 차원의 검찰로 이원화돼 있습니다.
연방 검찰은 93개의 관할 구역별로 검찰청이 있고, 각 검찰청을 이끄는 연방 검사(우리나라로 치면 검사장)가 임명됩니다. 연방 검사는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며, 대통령 퇴임 때 함께 사퇴하는 게 관례라고 합니다. 이들은 연방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습니다(연방 법무부 장관은 연방 검찰총장을 겸합니다). 연방 검사 아래에서 다수의 부검사들이 일합니다.
주 검찰은 다시 주 검찰총장과 지역별 검찰청으로 나뉩니다. 주 검찰총장은 주지사처럼 선거로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별 검찰청은 광역자치단체(카운티)마다 설치돼 있고,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검사(우리로 치면 검사장)가 이끕니다. 그 아래 다수의 부검사들이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지난 3회, 4회 참조)
주 검찰총장과 지역별 검사는 하나의 조직으로 엮이지 않고 상하관계도 아닙니다. 주 검찰총장은 대부분 주지사에 대한 법률자문 등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며 수사·기소에 관여하는 일은 드뭅니다. 지역 검찰에 대한 지휘권도 없습니다. 각 지역 검사는 독립적으로 사건을 처리합니다. 자치 검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주 차원의 검찰은 이처럼 단일한 위계적 조직이 없고 철저히 분권화돼 있습니다. 뉴욕주 뉴욕시의 경우 시 전체를 통할하는 검찰청은 없고, 5개의 행정단위인 보로(borough)마다 독자적인 검찰청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가 트럼프를 기소한 맨해튼 검찰청입니다.
중첩된 상호견제, “권력을 몰아주지 않는다”
미국의 연방 검찰과 주 검찰은 상호 보완적이면서 동시에 견제하는 관계입니다. 연방 검찰은 연방법 위반 사건, 주 검찰은 주 형법 위반 사건을 관할하지만, 트럼프 사례에서 보듯 한 사건이 연방법 위반이자 주 형법 위반인 경우도 흔합니다. 이때는 협의를 통해 어느 쪽이 사건을 담당할지 정하되 보통은 연방 검찰이 우선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연방 검찰이 사건을 덮을 경우 주 검찰이 당연히 개입할 수 있습니다.
상호 견제는 주 검찰 안에서도 이뤄집니다. 주 검찰총장은 직접 사건을 다루는 일이 드물지만, 지역별 검사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직접 기소권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검찰청 검사가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한 설명을 보시죠.
“연방 검찰은 연방법을 어긴 범죄만 기소할 수 있어요. 하지만 법이란 게 걸면 다 걸리게 마련이죠. 복지법인 원장이 돈을 횡령했다면 그는 주법뿐 아니라 연방법도 위반하게 돼요. 세 검찰청이 모두 관여할 수 있는 거예요. 세 검찰은 서로 연관돼 있지 않아요. 카운티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한다 해도 주 검사(검찰총장)는 기소할 수 있어요. 카운티 검사는 주 검사를 저지할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죠. 세 곳이 같은 사건을 보고 모두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알 카포네 아시죠? 1920, 1930년대 유명한 시카고 갱단 두목. 돈으로 일리노이주 검사장(검찰총장), 시카고 검사장을 모두 손아귀에 넣고 있었어요. 아무 문제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죠.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감옥에 갔습니다. 왜일까요? 연방 검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방 검사까지 매수할 순 없었던 거예요. 이게 미국 사법제도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비슷한 힘을 갖고 있어요. 나쁜 사람들이 이걸 모두 피해가기란 아주 어려워요. 미국인들은 하나의 기관이 전부를 다루는 걸 원하지 않아요.”
독일도 16개 주마다 별도 검찰조직
우리는 검찰이 국가 전체 차원의 단일 조직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현대적인 검찰제도를 선도해온 서구 국가들에 비춰보면 이는 오히려 특이한 현상입니다.
독일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연방 검찰과 주 검찰로 이원화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애초 독일제국 시절부터 이같은 체제였는데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 개의 국가검찰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연방제로 복귀하면서 서독에는 검찰 이원화 체제가 다시 들어섰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에서는 계속 중앙집권적인 단일 검찰체제가 이어지다가, 동서독 통일 뒤 동독 지역도 연방제로 편입되면서 검찰 역시 이원화했습니다.
독일에는 연방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소규모의 연방 검찰이 있고, 이와 독립적으로 16개 주마다 별도의 검찰 조직이 있습니다. 연방 검찰은 연방의 안보와 관련한 일부 사건을 다루며, 연방 대법원에 올라온 형사사건의 공판을 담당합니다. 대부분의 일반 형사사건은 주 검찰이 처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의 주 안에 복수의 최고 검찰청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검찰청이 여러 개 있고 검찰총장도 여러 명 있는 셈입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카를스루에와 슈투트가르트에 2개의 최고 검찰청이 있고, 바이에른주는 밤베르크·뮌헨·뉘른베르크에 3개의 최고 검찰청이 있습니다. 이밖에 니더작센주(3개), 라인란트팔츠주(2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2개) 등도 복수의 최고 검찰청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 주는 과거 여러 개의 영방국가로 존재하다가 하나의 주로 통합된 경우인데, 각 영방에 있던 최고 법원과 최고 검찰청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주에서 복수의 검찰총장은 상호 독립적이며, 주 법무부 장관이 이들을 지휘·감독합니다.
35명의 ‘검찰총장’이 있는 나라, 프랑스
연방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제 국가인 프랑스는 어떨까요? 프랑스에도 사실상 다수의 검찰총장이 존재합니다.
프랑스 검찰 조직은 한 개의 대검찰청, 35개의 고등검찰청, 181개의 지방검찰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검찰청의 수장인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에 대한 지휘권이 없습니다. 수사나 기소를 직접 담당하지도 않습니다. 형사정책을 수립하는 기능도 없습니다.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의 공판에 관여하는 역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자리는 고등검찰청 검사장입니다. 관할 지방검찰청과 그 소속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검사에 대한 근무평정 권한도 갖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도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프랑스에는 지역별로 분권화한 35명의 검찰총장이 존재하는 셈입니다(직위 명칭에서도 이들과 검찰총장은 똑같이 procureur général로 불립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1인 검찰총장’은 없는 것입니다. 프랑스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갖고 있는데, 이 역시 전체 검찰이 아니라 각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정점으로 한 여러 개의 검사동일체인 것입니다.
테러리즘과 같은 안보 관련 사건이나 대규모 경제 사건, 조직범죄 사건 등 전국적 대응이 필요한 일부 분야에 대해선 별도의 특별 검찰청을 두어 전국 관할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프랑스에서는 주요 사건 수사를 법원에 속한 예심판사가 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검찰은 직접수사 기능이 없고, 주요 사건 수사는 예심판사에게 맡깁니다. 따라서 예심판사는 우리나라 검찰에서 직접수사를 담당하는 특수부 등과 비견됩니다(2006년 기준 예심판사는 609명 규모입니다). 그런데 예심판사들은 일반 판사와 마찬가지로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을 이루지 않고 각자가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예심판사 제도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화한 검찰 구조를 가진 프랑스조차 단일한 검찰조직이 없고, 수십개의 지역별 검찰로 분권화돼 있습니다. 게다가 주요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예심판사는 아예 ‘조직’이라고 부를 만한 구조 자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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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왜 ‘1인 검찰총장’ 신설을 접었나?
프랑스에서도 전국의 검찰을 지휘하는 단일한 검찰총장 직위(국가검찰총장, procureur général de la nation)를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대대적인 정치적 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쟁점 사안을 검토하게 했습니다. ‘제5공화국 체제의 현대화와 균형 회복에 관한 성찰 및 제안을 위한 위원회’입니다. 이 위원회가 검토한 안건 중 하나가 국가검찰총장 신설 여부였습니다. 이듬해 위원회는 헌법 개정을 포함한 광범위한 제도 개혁을 대통령에게 권고했지만, 국가검찰총장 신설 안건은 여기에서 제외했습니다.
국가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독립해 전국의 검찰을 통합 지휘하는 자리로 제안됐습니다. 두 가지 장점이 제시됐습니다. 하나는 검찰권의 통일성을 강화함으로써 국토 전체에 걸쳐 법이 균등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을 분리함으로써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원회는 형사정책의 방향 설정과 실행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몫이고, 정부가 이에 대해 의회에 책임을 지는 구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국가검찰총장 신설로 검찰의 독자성이 강화되고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권한이 축소된다면, 검찰권 행사가 국민 대표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원회는 “의회 앞에 책임지는 장관이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는 게 형사정책 실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검찰에 관한 프랑스적 개념에 부합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검찰의 조직·기능 분권화 필요, 당장은 특검이 대안
하나의 조직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면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을 견제할 다른 기관이 없으면 검찰은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실제 그렇게 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가게 됩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 조직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우리나라 검찰제도는 검찰권 오남용의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거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돼버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폐해의 극단적 사례입니다. 전국의 검찰 조직을 검찰총장 한 사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사조직화’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검찰 조직 자체가 하나의 정치결사체처럼 움직이는 듯합니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찰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나아가 특정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미국·독일·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듯 우리나라처럼 전국적으로 거대한 하나의 검찰조직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것은 예외적 현상입니다. 민주국가에서 이렇게 권한이 집중된 기관, 더구나 민주적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는 기관은 비정상적입니다. 상호견제가 가능하도록 검찰의 기능과 조직을 분권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연방제 국가가 아니어서 미국이나 독일처럼 검찰을 이원화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특검입니다. 별도의 조직을 두지 않고도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힘든 사건에 특검 도입을 더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검찰이 기소권을 독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소권을 여러 기관으로 나누는 제도적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의 분권화와 관련해 기소권 분산보다 더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게 수사-기소권 분리입니다. 다음엔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9일24일 뵙겠습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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