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해외투자 확대가 무조건 능사일까? [조원경의 경제·산업 답사기]
국민연금 제도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바꾸려 한다. 지난해 제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55년 무렵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을 증대할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지난해 1000조원을 넘었다. 1988년 기금을 만든 지 35년 만에 일본 공적 연금(1987조원), 노르웨이 국부 펀드(1588조원)에 이어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이하에서는 국민연금 운용의 해외자산 투자 확대 방향의 기회와 위험 요인을 동시에 분석해 보기로 한다.
달러 선(先)조달 한도 탄력적으로 운용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달러 선조달이 중요하다. 저가 매수 기회가 온 해외자산을 적기에 매입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거래비용을 줄여야 일차적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국민연금의 달러 선조달 한도를 월 30억 달러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운용을 지원하고 환전 수요를 분산해 외환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종전에는 해외자산 투자를 할 때마다 달러를 대거 사들여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
국민연금이 해외자산 투자를 위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사들인 달러는 올 상반기 평균 월 20억~30억 달러 수준이었다. 반면 선조달 규모는 2022년 9월 이후 월 10억 달러로 묶여 있다. 국민연금과 외환 당국은 14년 만에 10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부활시키고 선조달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번에 근본적인 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해외투자 규모도 선조달 필요성을 정당화한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는 2024년 3월 말 4477억 달러로 외환보유액 대비 107% 수준이다. 2030년에는 119%로 외환보유액을 크게 넘어설 전망이다.
해외자산에 투자한 규모는 2019~2023년간 277조 2000억원 늘었다. 매년 해외자산 규모가 70조원 불어난 셈이다. 해외자산 비중도 같은 기간 34.9%에서 51.6%로 커졌다.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1988년부터 작년까지 해외주식 평균 수익률은 11.04%로 국내 주식 수익률(6.53%)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그러니 해외투자 확대 압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 방파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2028년까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을 약 60%로 확대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5년 뒤로 연기되니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국내 자산 대신 해외자산을 늘리는 게 연금 고갈을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니 국내 주식시장은 구멍가게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대규모 해외 자산이 환리스크에 노출
국민연금은 2018년 이후 해외투자에 대해서 100% 환오픈을 원칙으로 해왔다. 즉, 환헤지 비율이 0%란 말이다. 하지만 2022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웃돌며 이례적인 환율 상승이 계속되자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에 환헤지 비율 상향을 요청했다. 이후 해외투자 환헤지 비율을 한시적으로 10%로 상향했다. 국민연금은 필요시 올해 말까지 5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외환당국을 통해 달러를 조달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외환당국에 거래일의 환율을 적용한 원화를 주고 달러화를 받는 형태다. 건별 만기는 6개월 혹은 12개월로 지난해와 같다. 만기일에는 국민연금이 외환 당국에 달러화를 주고 거래일의 스와프 포인트를 고려한 환율을 적용해 계산한 원화를 받는다.
해외자산 전체에 대한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0%로 설정한 배경은 뭘까? 우선 협소한 국내 외환스왑시장을 들 수 있겠다. 이는 파생상품 운용의 한계로 귀결된다. 다음으로 기금 전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축소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환헤지 비율을 0%로 두면 해외채권 자체의 변동성은 증가할 수 있다. 다만 외환과 다른 자산군 수익률 간의 음(-)의 상관관계로 인해 기금 전체적으로는 변동성이 축소했다.
정부는 협소한 국내외환시장(파생 포함)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국내 외환시장 역사상 최초로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시장 거래를 허용했다. 이르면 2025년부터 골드만삭스, HSBC 같은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원화를 사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치가 향후 외환 스왑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국민연금 해외투자 증가가 초래하는 리스크 요인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 요인이란 주장이 있다. 2022년 미국발 금리 인상 고조로 환율이 급상승할 때 국민연금이 대규모 해외투자를 지속하면서 환율이 더 올랐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물론 국민연금은 2022년 해외투자를 자제하고 2023년 더 늘린 것으로 보인다. 100% 환오픈이 이뤄진 2018년 이후에는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나타냈다. 해외투자정책과 환오픈 정책이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 수익률 상승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2027년에는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급여 지출을 충당할 수 없게 된다는 측면이다. 급격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활동인구 감소로 연금 가입자는 감소한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의 계속된 은퇴로 수급자는 급증하면서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아진다. 2027년 보험료 수지 적자를 앞두고 현재의 해외투자 전략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한지 고민할 시점이 도래했다. 기금 감소기에는 대규모 해외자산 매각에 따른 국민연금의 외환 순매도로 외환 공급이 지속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는 향후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행 체제하에서는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줄어드는 2040년부터 매년 50조~100조 원 규모의 해외 자산 매각 대금이 국내로 반입되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게 한국금융정보학회의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다. 다양한 변수의 영향을 받겠으나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매각과 외환 순매도는 환율 하락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해외자산 매각 가속화가 초래할 문제점과 제안 사항
환율이 하락압력을 받을 때마다 원화 환전 가능 규모는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해외 자산이 불과 10~20년 만에 매각해야 하는 만큼 해외투자가 급격히 늘었다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대규모 환전이 이뤄지면 외환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적립금은 2039년 1430조 9000억 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 586조 5000억 원으로 10년 만에 약 850조 원이 줄어든다고 본다. 이후 불과 3~4년 만에 남은 적립금도 모두 고갈된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재정 전망과 환오픈 전략이 대외적으로 공개되면 이를 이용해 차익 거래를 하려는 해외 헤지펀드의 타겟 매매에 노출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외환거래 방향을 예상한 헤지펀드 가 외환시장 방향을 미리 예측해 행동하면 환율의 쏠림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어 큰 문제라 하겠다. 최근에도 국민연금의 향후 주식투자 확대 방향과 서학개미들의 주식투자는 원/달러 환율의 상승압력으로 작용했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에 따라 환율이 하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한국 연기금의 낮은 환헤지 비율과 해외투자 확대 계획으로 당분간 대규모 해외투자가 원화의 절하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자금이 회귀할 때는 해외 자산을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장기간 환율 절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의 전략을 읽는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한국과 유사한 인구 통계적 특성을 보인 대만 생명보험사의 헤지 비율은 70%에 이른다. 우리와 상당히 대조적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몇 가지 사안을 제안할 수 있겠다.
첫째, 해외투자가 늘어날수록 환헤지의 탄력성을 제고하는 것이 오히려 전략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환헤지 가능 범위를 지금처럼 좁게 설정할 필요는 없고 거시경제 여건을 감안해 유연하게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환헤지 비율은 헤지 비용, 환율의 예상 경로, 환율과 해외자산 가격 변수 간 상관관계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는 게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환 효과는 달러 수익률을 원화로 환산한 원화 환산 효과와 환헤지 파생상품 평가손익의 증감에 따른 환헤지 효과로 구분된다. 자산별 특수성을 고려해 환헤지 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야 헤지펀드가 환헤지 비율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둘째, 특히 100% 환오픈은 미국의 금리 인하시기에는 위험한 전략이다.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해 한미간 금리 역전 가능성이 클 경우는 환헤지를 시행한다면 손실이 발생할 공산이 컸다. 한미간 금리 역전 현상이 해소될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과거처럼 우리가 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셋째, 현재 논의 중인 국민연금 구조개혁 결과를 반영하여 운용시스템 전반을 새롭게 구축해야한다. 불확실성이 뉴노멀인 상황에서 해외투자만이 살길이라는 것은 꼭 옳다고 볼 수 없다. 해외 투자 비중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재검토할 수 있다. 구조적 불확실성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국익을 위해 좋을 수 있다. 국민연금 구조개혁안이 합의되면 이에 따른 기금 수지 전망을 감안해 투자전략을 얼마든지 재검토할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선 정부의 밸류업(기업 가치 상승) 정책에 호응하는 국내 매수 세력은 없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주식투자는 22조9000억원을 순매수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외국인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했다. 이 기간에 국민연금이 주축이 된 연기금도 주식을 팔아치웠다. 자칫 국부 유출이란 오명을 쓰기 적합한 상황이다. 연기금과 정부가 함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유연성이 제대로 발휘될 시점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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