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패럴림픽] '믿음'과 '믿음'이 맞닿은 지점, 보치아 '패럴림픽 10연속 금메달'의 위업은 거기서 탄생했다
[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우리 캡틴이 해결해줬습니다."
임광택 패럴림픽 보치아 대표팀 감독은 연신 "좋아요. 속이 다 후련합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풀렸어요"라고 말했다. 앞선 두 번의 결승전 패배. 패럴림픽 무대는 한국 보치아에 쉽사리 '10연속 금메달'의 업적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다. "좀 아쉽지만 괜찮아요. 곧 나올겁니다." 임 감독은 정성준(46·경기도장애인보치아연맹)과 정소영(36·충청남도장애인보치아연맹)이 각각 보치아 남녀 개인전 결승에서 주저앉을 때마다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말과 달리 가슴 속 깊은 곳은 멍들어만 갔다. '이대로 전부 은메달에 머무는 건 아닐까' 걱정이 임광택 감독의 마음 속을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 한 줄기는 남아 있었다. 한국 보치아팀의 캡틴이자 에이스. 지금껏 월드챔피언십과 장애인아시안게임, 그리고 앞선 패럴림픽에서 무려 금메달 8개를 따내며 국제 무대에서 '레전드'로 통하는 인물, '보치아계의 페이커' 정호원(38·강원특별자치도장애인체육회·세계 3위)이 임 감독이 믿고 있는 마지막 희망의 줄기였다.
그 믿음이 결국 통했다. 정호원은 3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에서 열린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결승에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세계 1위)을 4엔드 합산 점수 5대2(3-0 1-0 0-2 1-0)로 꺾고 그토록 염원하던 '한국 보치아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위업을 달성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경기장 밖에서 파이팅을 외쳤던 임광택 보치아 대표팀 감독과 경기 파트너로 정호원의 곁에 있던 김승겸 코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호원이 태극기를 두르고 세리머니를 마치자마자 정호원을 휠체어에서 들어올려 헹가래를 쳤다. 서너 차례 헹가래를 치다 힘에 부쳤는지 임 감독과 김 코치는 정호원을 안고 함께 옆으로 뒹굴었다. 세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서 얼싸안은 채 마치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조정두(P1 남자 10m 공기권총 스포츠등급 SH1)와 박진호(R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스포츠등급 SH1·이상 사격)에 이은 파리패럴림픽 한국 선수단 세 번째 금메달. 기쁨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결승전 좌절을 딛고 일궈낸 성과라는 점이 임 감독과 김 코치 그리고 정호원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한국 보치아는 1988년 서울패럴림픽 때 첫 금메달을 수확한 이래 2020도쿄대회까지 9연속 금메달 행진을 이어왔다.
정호원이 그 중에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2008년 베이징대회 페어, 2016년 리우대회 개인, 2020 도쿄대회 페어에서 3개의 금메달. 이때까지 보치아가 9번의 패럴림픽에서 총 10개의 금메달을 땄으니 정호원은 혼자 30%를 책임진 셈이다. 여기에 금메달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낸 정호원은 금메달 획득의 원동력으로 임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위안을 손꼽았다. 부담감 때문에 주저앉을 뻔했던 정호원을 코칭스태프가 단단히 붙들어 다시 경기에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정호원은 "솔직히 말을 안해서 그렇지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며 "김 코치님이 옆에서 이런저런 실험도 하고 (보치아 홈통을) 개발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노력했다. 덕분에 경기력이 향상됐고, 비로소 올해 들어서는 다시금 '보치아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호원은 믹스트존에서 라커룸으로 빠져나가다 임 감독과 진한 포옹을 나눴다. 임 감독이 먼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정호원에가 다가 "수고했다"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정호원은 그 순간 임 감독의 귀에 대고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임 감독은 "대표팀 캡틴 정호원이 꼭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 믿음에 응답해줬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화답하며 다시 한번 정호원을 끌어안았다.
정호원과 임광택 감독, 김승겸 코치 사이에는 '너라면 할 수 있어', '네 덕분에 할 수 있어'라는 강한 믿음의 고리가 형성돼 있었다. 그 믿음이 아니었다면, 정호원도 다른 두 선수들처럼 마지막 순간 주저 앉았을 것이다.
정호원은 흔들림을 이겨내고 자신의 실력을 최고조로 발휘해냈다. 그리고 덕분에 '보치아 패럴림픽 10연속 금' 타이틀이 탄생했다.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들이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보치아 최강국' 한국의 위용이 탄생한 것이었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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