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미래다]① “文 정부, 탈원전하려 수요 축소”… 올해 원전 4기분 오차

박성우 기자 2024. 9. 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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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올해 수요 93.5 예상, 실제 97.1GW
원전, 발전단가 낮지만 인허가 등 오래 걸려
전력 수요 적게 예측해야 미리 준비못해

정부는 주기적으로 중장기 에너지 계획을 수립한다. 미래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수립돼야 할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되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돌아온다.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의 미비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랐던 지난달 20일, 최대 전력수요는 97.1GW(기가와트·17시 기준 잠정치)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에 수립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에서는 올해 최대 전력수요를 93.5GW로 예상했는데, 실제 수요가 3.6GW 더 많았던 것이다. 통상 원자력 발전소 1기의 발전용량이 1GW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4기 용량 정도의 수급 오차가 발생했다.

자가용 태양광을 포함한 시장 내외 최대 총수요는 2년 연속 100GW를 넘었다. 지난달 7일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의 전력 수요는 100.2GW를 기록해 지난해 8월 7일(100.571GW)과 8월 8일(100.254GW)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100GW를 넘었다.

정부가 2년 마다 세우는 전력계획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전력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2011년 9월 15일에 발생한 블랙아웃(black out·대규모 정전)이 재현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소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탈원전 추진 문재인 정부, 최초로 전력 전망 줄여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의 8차 전력계획은 발표 당시부터 과소 추계 논란을 빚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5년까지 예비율(전력 수급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로 예비 전력을 최대 수요로 나눈 값) 19%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나 올 여름 예비율은 최저 8.5%까지 떨어져 적정 예비율에 한참 못 미쳤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전력계획 상 최종연도 전력 수요 예측치는 계속 늘었다. 2002년 처음 세운 1차 계획에서는 2015년 전력 수요를 67.7GW로 예상했고 최종연도 수요 예측치는 2차 68.7GW(2017년)→3차 71.8GW(2020년)→4차 81.8GW(2022년)→5차 95GW(2024년)→6차 하계 110GW·동계 106GW(2027년)→7차 하계 111GW·동계 112GW(2029년)로 계속 증가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8차 전력계획에서는 2031년의 최대 전력 수요를 하계 98GW, 동계 101GW로 예상해 사상 처음으로 최종연도 수요 예측치가 과거보다 줄었다. 7차(2029년)와 비교하면 전력 수요 전망치가 각각 11.7%, 9.8% 감소했다. 8차 전력계획에서는 전력 수요가 97.1GW를 넘어설 시점을 2030년(97.5GW)으로 봤는데, 실제론 6년이나 빠른 올해 넘어선 것이다.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많았지만, 올해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2호기 등 원전 21기를 가동하면서 전력 수요를 방어할 수 있었다.

그래픽=손민균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신규 원전 중단 및 건설계획 백지화를 천명했다. 이후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됐고 천지 1~2호기 계획 취소, 고리원전 1호기·월성 1호기가 영구정지 됐는데 그 규모만 10GW 수준”이라며 “여기에 탈원전 정책으로 10년 내에 설계 수명이 끝나 영구정지 될 수 있는 원전이 고리 2호기를 포함해 10기에 달한다”고 말했다.

◇ 전력 수요 과소 예측 → 원전 축소 → 신재생 확대

문재인 정부의 전력 수요 과소 추계 방침은 2년 뒤인 9차 계획에도 반영됐다. 9차 전력계획에서는 2034년 최대 전력 전망을 하계 101GW와 동계 102GW로 봤는데, 이는 2032년과 비교해 각각 3%,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학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고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전력 수요를 과소 예측했다고 본다. 원전을 지으려면 용지 확보부터 완공까지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미래에 전력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야만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 계량기 모습. /뉴스1

문재인 정부는 미래에 전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 신규 원전 6기의 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 또 한울 1·2호기 등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을 금지해 2017년 기준 24기인 원전을 2030년까지 18기로 줄이기로 했다. 대신 당시 7% 수준이었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로 늘릴 예정이었다.

지난해 ㎾h당 전력 정산단가(도매가격)는 원전이 55원, 액화천연가수(LNG) 214원, 신재생에너지 171원이었다. 한국전력은 이 가격으로 전기를 사 ㎾h당 150원 안팎에 전기를 판매한다. LNG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을수록 한전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한전은 2021년 2분기부터 작년 2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이 기간 누적 적자는 약 47조5000억원에 달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전력 수요를 과소 예측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 전력 부족이 예상되면 단기간에 공급할 수 있는 LNG나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기 위한 속셈으로 보인다”며 “에너지 수요 예측과 공급은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저렴한 요금으로 걱정 없이 전기를 쓸 수 있는데, 이념과 정치가 개입하면서 국민과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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