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뒤흔든 빙그레 후계 구도…차남에게 기회 열리나
승계 싸움 원점으로…‘포스트 김호연’의 향방은?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빙그레의 후계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유력한 승계 후보로 꼽힌 김동환 빙그레 사장(41)이 술에 취해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장남인 김 사장이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면서 향후 경영권 승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차남인 김동만 해태아이스크림 전무가 서서히 경영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특히 장녀 정화씨를 포함한 오너가 3세 3인 모두 빙그레 지분이 없는 터라 승계 구도가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입사 10년 만에 사장직 올라 3개월 만에 구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2남 1녀 중 장남이자 빙그레를 이끌고 있는 김동환 사장의 승계 레이스에 제동이 걸렸다. 8월14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김 사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는 6월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서 술에 취한 채 소란을 피우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경찰관은 술에 취해 있던 김 사장에게 귀가를 권했지만 김 사장은 "내가 왜 잡혀가야 하느냐"며 경찰관을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 측은 "저로 인해 불편을 입으신 분들께 다시 한번 사죄드리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선 음주로 인한 이번 사건이 사장 승진 3개월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EY 한영 회계법인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다. 빙그레에는 2014년 입사해 구매부 과장, 부장 등을 거쳐 2021년 1월 마케팅 전략 담당 상무에 오르며 임원이 됐다.
7년 만에 임원에 오른 그는 2022년 경영기획‧마케팅 총괄 본부장에 이어 올해 3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이후 10년간의 경영수업 끝에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사장 승진 3개월 만에 불미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특히 사건이 월요일 아침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경영자로서의 자세도 도마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김 사장이 당시 휴가 중이었는지' '현재 정상 업무를 하고 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빙그레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 빙그레가 도약의 기로에 서있다는 점에서 오너 일가의 일원이자 회사를 이끄는 김 사장의 책임감 결여를 지적하는 의견도 회사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빙그레는 올해 '빙과 시장 왕좌' 탈환을 노리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 포함)의 지난해 국내 빙과 시장 점유율(소매점 매출 기준)은 39.85%였다. 롯데웰푸드(39.86%)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태다. 2021년 양사의 점유율 격차가 7%포인트에 달하기도 했지만 2020년 인수한 해태아이스크림과의 시너지 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와 같이 중요한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가 실적 하락에 영향을 줄지 업계에선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차남 담당 자회사 실적 상승세…김 회장 선택은?
일각에서 이번 사건이 빙그레 승계 구도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재계에선 올해 3월 빙그레의 승계 작업이 본격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10년간 경영 수업을 받은 김 사장이 삼남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사장 타이틀을 획득하며 승계 구도를 굳힌 모양새였다. 장녀 정화씨는 계열사 임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는 상황인 데다 차남인 김동만 해태아이스크림 전무는 지난해에야 임원으로 합류했다는 점도 김 사장을 '승계 1순위'로 꼽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 사장이 구설에 오르면서 차기 후계자 향방을 점치기 어려워졌다고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재계에선 차남인 김 전무가 어떤 역량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승계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87년생인 김 전무는 미국 터프츠대를 졸업하고 2011년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이후 이베이코리아에 입사해 G마켓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어 빙그레의 냉장·냉동 제품을 운송하는 물류회사 '제때'에서 경험을 쌓고 지난해 1월 빙그레 자회사인 해태아이스크림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해태아이스크림에서 경영기획과 생산혁신 총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 전무 역시 경영 능력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첫해 성적은 양호하다. 해태아이스크림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각각 1991억원과 1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3.8%, 영업이익은 175% 증가했다.
김 사장과 김 전무의 빙그레 지분이 전무하다는 점도 승계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배경이다. 빙그레의 최대주주는 지분 36.75%를 보유한 김호연 회장이다. 김 회장의 빙그레 지분이 누구에게 증여, 상속되느냐에 따라 후계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삼남매는 빙그레 지분이 없다. 다만 삼남매 소유의 물류 자회사 제때가 빙그레 지분 1.99%를 갖고 있다. 제때는 김 사장이 33.34%, 김 전무와 정화씨가 각각 33.33%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선 빙그레가 제때를 기업공개(IPO)나 합병 등을 통해 승계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1조원 돌파에 사상 첫 영업이익 1000억원을 달성한 시점에 장남의 사장 승진은 승계 작업의 중요한 의미로 해석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생활로 오너 리스크를 자초했다는 점은 김 사장의 뼈아픈 실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이 경영 능력 외에 다른 요소들도 검증대에 올릴 것"이라며 "김 회장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평가가 끝나면 예상보다 빠르게 '포스트 김호연'을 결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1955년생인 김 회장은 올해 만 69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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