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지역 할당이 '강남 집값' 해결할까? [취재파일]

임태우 기자 2024. 9. 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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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명문대학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여겨집니다. 미국의 하버드, 영국의 옥스퍼드, 일본의 도쿄대, 중국의 칭화대,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크닉, 독일의 뮌헨 공대, 그리고 한국에는 서울대가 있죠. 이들 대학의 입학 경쟁은 치열한데,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졸업 후 '괜찮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인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명문대 졸업생들의 '괜찮은 미래'는 여러 연구 결과로 뒷받침됩니다. 2012년 비교경제학저널에 실린 'Does attending elite colleges pay in China?'라는 제목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칭화대나 베이징대 같은 엘리트 대학 졸업생은 다른 대학 졸업생보다 평균 26.4% 더 높은 초봉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트 대학 졸업에 아버지의 교육 수준까지 높으면, 8.2% 포인트 더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명문대 졸업장이 가정 배경과 결합하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겁니다.


국내 연구도 있습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명문대 졸업자들은 노동시장 진입 시 14% 정도 높은 임금을 받았고, 40~44세가 되면 그 격차가 46.5%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명문대 졸업의 효과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명문대 졸업 혜택은 단순히 임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 연구를 통해 명문대 졸업자가 승진과 결혼, 사회적 네트워크, 정치적 영향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문대 졸업장은 단순한 학력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명문대 선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 체계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서울 강남 대치동이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도 사교육을 통한 명문대 진학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지름길로 여겨집니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대치동에 몰려들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매진하는 풍경은 딱히 놀랍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최근 서울대와의 공동 심포지엄 자리에서 매우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습니다. 서울대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뽑게끔 하는, 이른바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뜬금없이 대학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행의 제안은 단순히 교육 기회의 균등을 넘어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경제적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한은은 지속된 입시 경쟁이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집값 쏠림'이라는 경제적 부작용까지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한국은행이 싱크탱크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최근 정부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는 시국임을 고려한다면, 한은이 부동산 장벽에 가로막혀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항변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의 결단으로 변화가 시작돼 특정 지역에 몰린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지방에서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 올 필요가 없어지고, 매년 학기 초가 되면 각 지역 고등학교의 입학 환영회 플래카드가 대학 정문에 걸리는 다양성이 확보된 대학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더 안정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은행은 입시 경쟁이 부동산 과열을 야기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2023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 상대 가격은 5대 지방광역시 대비 5배를 웃돈다는 점, 강남구와 서초구로의 초중생 전입률이 2011년 1.4%에서 2023년 2.6%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 2023년 강남구와 서초구의 학급당 초중생 수는 25.6명으로 전국 평균인 21.9명보다 약 4명 더 많다는 점 등입니다. 서울 강남 중심으로 교육 목적의 이주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은 과도한 입시 경쟁이 저출생과 만혼, 수도권 인구집중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높은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은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지방 소멸이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서울대생 지역 할당제 도입을 통해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얽히고설킨 여러 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정 지역에 몰린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입시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올 필요가 없어지며, 결과적으로 강남 집값 안정화와 수도권 인구 집중 완화, 교육 기회의 지역 간 격차 해소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제안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첫째,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부정적인 문제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중등교육 성취도인 GCSE 성적이 10% 증가할 때 주택 가격이 7.8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영국의 셰필드(Sheffield)시에서 여러 요인들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회귀 분석 결과입니다. 침실 수나 주택 유형, 주택 상태는 주택 가격 간의 상관성이 약했지만 학교 성적 추가 모델(7번)에서는 통계적인 설명력(Adj R-squared)이 강하게 증가했습니다. 즉, 학교 성적이 좋을수록 해당 지역의 주택 가격이 더 비싸진다는 통계적인 경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작년 호주의 연구에서도 질 좋은 공립학교가 있는 지역의 주택 가격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시드니 일반 주택 기준으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NAPLAN)가 1점 높을수록 해당 지역 주택 가격은 3.9% 상승했고, 고등학교 학업성취도의 경우 1점 상승 시 주택 가격은 2.7~2.8% 높아졌습니다. 아래 그림은 호주 시드니 지역의 학교 질과 주택 가격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4개의 지도입니다.

왼쪽 상단 (A) : 일반 주택에 대한 초등학교 질의 영향
오른쪽 상단 (B) : 일반 주택에 대한 고등학교 질의 영향
왼쪽 하단 (C) : 공동 주택(아파트 등)에 대한 초등학교 질의 영향
오른쪽 하단 (D) : 공동 주택에 대한 고등학교 질의 영향


녹색은 학교 질이 높을수록 주택 가격이 비례하는 경향을, 빨간색은 상관관계가 약하거나 반대임을 뜻합니다. 전반적으로 시드니의 여러 지역에서 좋은 학교가 있는 곳의 주택 가격이 더 높은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와 동부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톤과 프랑스 파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도 교육의 질과 부동산 가격 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즉,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 문제가 이들 외국 도시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비교가 이뤄져야 개선의 당위성이 생길 텐데, 한국은행 보고서에선 그런 비교를 찾을 수 없습니다.

둘째, 서울대 지역 할당제 도입에 따른 부동산 안정 기대 효과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앞서 셰필드나 시드니 등은 교육 환경이 좋으면서도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서 살기가 좋은 도시입니다. 즉, 교육 환경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은 지역에 대한 수요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교통의 편리성, 문화 시설과 상권 집중, 대기업 본사의 밀집, 일자리의 풍부함 등 다른 환경적 요인들이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이주 수요만 제거한다고 해서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이 반드시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셋째,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정부와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학생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울 강남의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기회가 줄어들 걸로 우려해 상당한 반대가 예상됩니다. 이미 잠재력 있는 상위권 학생들이 강남에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입시 경쟁 모수가 되는 입학 정원을 한국은행 주장대로 지역별 학령인구 기준으로 정한다면 실질적인 경쟁률이 치솟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강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입시 경쟁이 불리해진다면 기본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서울대도 고민일 수 있습니다. 크게는 다양한 지역 인재 확보와 입시경쟁 실종에 따른 학생 수준 저하를 놓고 득실을 저울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차곡차곡 만들어진 '대치동 공화국' 체제를 허물기 위해선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 주장처럼 완전한 형태의 지역 할당제를 시행하는 대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역이나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해 부분적인 할당제나 우대 정책을 시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제안은 '극약 처방'에 가깝습니다. 복용 리스크가 크다 보니 이 약을 쓰려는 의사도, 먹으려는 환자도 모두 부담입니다. 이 약을 먹고 100% 확실하게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면 말입니다. 한국은행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매스를 대기로 결심한 이상 일회성 공론화에 그치지 말고, 더 완성도 높은 설루션을 제안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길 기대합니다.

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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