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대원칙은 ‘기여 - 급여’ 균형… 그래야 지속가능성 담보된다 [Deep Read]
尹, ‘폭탄 돌리기’ 끝낸다 의지 피력… 정부·국회, ‘저부담 - 고급여’ 고질적 문제 해결책 내놔야
법적 명문화·세대별 인상률 차등화 득실 살피고, 적정보험료율 인상 위한 구체 로드맵 마련 시급
교착 상태에 빠졌던 연금개혁 논의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연금개혁 방안 제시로 다시 동력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의 3대 원칙으로 지속 가능성, 세대 간 공정성,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천명했다. 국민연금 지급 법제화 방안과 함께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 도입, 보험료 인상률 세대별 차등화, 기초연금 40만 원 인상 등도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연금개혁 방안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청년세대의 연금 불안을 더는 데 방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너무 세부적으로 정책 제안의 가짓수를 늘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가중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 ‘폭탄 돌리기’를 끝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만큼, 이제 정부와 국회가 연금제도 도입 때부터 ‘저부담-고급여’로 설계됐던 원초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잘못된 연금 설계
연금개혁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급여를 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보험료 납부와 급여, 즉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재정 안정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에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됐다. 시작부터 재정 안정성이 취약한 상태로 출발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인인구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로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크게 위협받게 됐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앞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의 수는 주는데 연금을 받을 사람의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때 연금 기금은 2055년에 고갈될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국민연금을 더 이상 모두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국가부도’에 버금가는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그 반대 시나리오로 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도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시기에 일하는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는 월 소득의 30% 이상에 달하게 된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미래세대의 처지에서는 왜 우리가 모든 비용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소위 미래세대의 ‘연금파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 경로는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제도가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기여와 급여의 균형
보험방식으로 설계된 연금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기여와 급여 사이의 균형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여에 비례해 급여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의 저부담 구조는 모든 가입자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부담과 비교해 더 높은 급여를 미래에 받게 되고, 그에 대한 모든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현실화해 올려야 하는데도 역대 정부에서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연금개혁 문제를 외면해 왔다. 문제는 폭탄 돌리기식으로 필요한 개혁을 미루는 사이 치러야 할 비용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 전가돼 왔다는 것이다.
현행 40% 급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균형보험료율이 19.8%가 돼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현행 보험료율 9%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위가 꾸려지고 개혁안으로 ‘12% 보험료율-40% 소득대체율’ 안과 ‘13% 보험료율-50% 소득대체율’ 안의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됐다. ‘12% 보험료율-40% 소득대체율’은 재정 건전성 확보에 주안을 둔 것이고, ‘13% 보험료율-50% 소득대체율’은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 두 개의 안은 시민 공론화 500인 위원회에서 투표에 부쳐졌고 ‘13%+50%’ 안이 56%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3%+50%’ 안은 지속 가능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비판에 처하면서 연금개혁의 과제는 다시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폭탄 돌리기가 계속된 것이다.
◇파묻힌 의제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연금개혁 방안 제시는 정부 차원에서 폭탄 돌리기를 멈추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인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의제는 묻히고 부수적이고 방법론적인 방안인 자동 재정안정화와 보험료 인상률 세대별 차등화 방안 등이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아쉽다.
적정보험료율로 평가되고 있는 ‘15% 보험료율’을 실현할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는 경제 상황이나 인구 변동에 따라 연금 지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연금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국민연금의 소득 보장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보험료 인상률 세대별 차등화 방안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당장 청년세대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형평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고소득 청년에게는 인상률을 낮추어 주면서 저소득 중장년층에게는 높은 인상률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이 있는 조치일까. 청년세대의 연령 구분은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가. 이러한 논쟁이 오히려 핵심적인 개혁 과제인 보험료율 인상 문제를 덮을 수 있다.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문화하는 것도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다. 국가가 연금 지급을 책임진다는 것은 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조세를 통해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국민연금의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동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어차피 국가가 지급할 것이면 굳이 보험료율 인상의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노후소득 보장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시급한 과제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연계성을 높여 다층적인 소득 보장 방안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초연금의 구조개혁을 통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초연금은 노인인구 70%에 매달 약 30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정도 급여로는 취약계층 노인 세대의 빈곤 탈피가 불가능하다. 지급 대상을 취약계층에 국한해서 좁히고 급여 수준을 대폭 올리는 방식으로 개편해 더 적극적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한국사회복지학회장
■ 용어 설명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말함. 현행 소득대체율 40%란 말은 보험료를 내는 동안 월 평균소득이 100만 원일 경우 노후에 연금으로 월 40만 원을 받는다는 뜻.
‘균형보험료’란 본인이 낸 돈만큼 연금을 받는 것을 가정할 때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 실제 보험료율이 균형보험료율보다 낮으면 낸 것보다 더 받아가는 구조이고, 높으면 덜 받아가는 구조임.
■ 세줄 요약
잘못된 연금 설계 :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에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설계됐음. 2055년 고갈에 따른 ‘국가부도’적 위기나 미래세대의 ‘연금파기’를 막기 위한 연금제도의 개혁이 시급.
기여와 급여의 균형 : 연금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기여와 급여 사이의 균형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 역대 정부·국회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연금개혁 문제를 외면해 왔음. 윤석열 정부는 이를 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파묻힌 의제 : 정부와 국회는 ‘저부담-고급여’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놔야 하며, 무엇보다 적정보험료율 인상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 마련이 시급. 이를 토대로 법적 명문화, 세대별 인상률 차등화의 득실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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