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문제해결 능력 불신이 유럽 극우 부상의 배경-WSJ

강영진 기자 2024. 9. 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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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증가·물가 상승·우크라 전쟁 등 중첩된 위기
정부 해결 능력 불신 갈수록 커지며 포퓰리즘 득세
1920년대처럼 타협 않고 통치하는 강력한 인물 원해
[바이마르=AP/뉴시스]독일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AfD가 선두를 차지하자 2일(현지시각)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바이마르에서 벌어졌다. 2024.9.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유럽에서 극우 파퓰리즘이 득세하는 데는 정부가 이민과 경제, 안보 우려 등의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는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 1일 독일 튀링겐 주 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 AfD가 40% 이상의 득표를 함으로써 선두를 차지하고 인근 작센 주에서도 2위를 하는 등 선전했다.

프랑스의 지난 7월 총선에서도 극우 국민시위당이 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해 선두 의석 정당이 됐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힘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민과 물가상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위기 상황이 지속돼온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런 위기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이런 위기를 현 정부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유권자들의 불신은 새로운 현상이다.

포르자 여론조사그룹의 만프레드 귈너 대표는 “위기 상황은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9.11 테러,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위기 때마다 국민들은 정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각종 위기가 중첩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르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어떤 정당도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불신한다. 정부를 믿는다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연초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기존 정치 제도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마찬가지로 많았다.

유럽 유권자 60% 기존 정치제도 불신

귈너 대표는 포퓰리즘 신생 정당들의 빙산의 일각일 뿐 무엇보다 기권하는 유권자가 많은 현상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튀링겐 주의 경우 투표 불참 비율이 26%, 작센 주는 56%에 달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유권자들이 정부를 불신하면서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고 기존 정당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의회의 분열이 한층 커지고 있다. 이는 다시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집권당의 안정적 과반수 확보를 위해 2차 투표를 거쳐 의원을 선출하는 프랑스에서조차 총선 뒤 한 달이 넘도록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 중부의 이비인후과 의사 제라르 브로츨리는 “정치인들이 성실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들은 성실하지 않고 무능하며 용기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이래 경제가 침체돼 있는 독일의 경우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세수 부족으로 경찰, 군대, 법원, 교육 등 모든 부분이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것이다.

지난달 23일 묻지 마 흉기 테러의 주범인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는 2년 전 추방됐어야 했으나 추방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당국이 그를 추방하려 수배했지만 소재를 찾지 못하자 이후 찾는 노력을 포기했다.

유명 정치학자인 헤르프리트 뮌클러는 어떤 정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현상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해결되지 못한 각종 위기가 겹겹이 쌓이면서 정부가 압도당하고 있다”며 1920년대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은 과도한 정부 부채로 인해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가 극도로 제한된다. 2022년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조치를 발표하자 정부 부채 증가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대거 파운드화를 팔아 치우면서 리즈 트러스 당시 총리가 취임 6주 만에 사임해야 했다.

유럽 전역에서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극하는 이유로 꼽힌다.

정부와 의회, 사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원칙인 민주주의 국가는 문제 해결에 느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체제 내재적인 취약점은 포퓰리즘 정치인리스트들이 공격하기 딱 알맞은 대상이다. 2000년대 초 폴란드의 포퓰리즘 형제 정치가인 레프 카친스키 대통령과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총리는 엄격한 법치 원칙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려 시도했다.

해결 불가능한 위기 중첩에 정부 압도당해

많은 정치인들이 해결을 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문제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 반도 합병 이후에 독일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을 줄이지 않은 일이 대표적이다. 독일 정부는 지금도 중국에 대한 과도한 수출 의존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또 2015년 동유럽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정책은 직접적으로 AfD가 득세하는 촉진제가 됐다.

정치적 파편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상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큰 배경이다. 3개 정당의 연립 정부인 독일 내각은 심각한 내부 의견 충돌로 인해 올해 예산안을 간신히 마련했다.

정치학자 뮌클러는 “정치적 타협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서 “그로인해 유권자들이 타협은 하지 않고 통치만 하는 강력한 인물의 등장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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