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의 본질 훼손할 ‘청개구리’ 대통령 개혁안 [왜냐면]

한겨레 2024. 9.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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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제대로 톺아보기 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찬섭 |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릴 때 들었던, 엄마 말과 늘 반대로 행동하던 청개구리 이야기를 다들 알 것이다. 이 이야기가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연금개혁안과 관련해 생각이 났다. 국정브리핑 내용을 보면, 정부의 연금개혁안 핵심은 세대별 차등보험료와 자동안정장치의 두 가지다. 이 두 가지가 청개구리 이야기와 무슨 상관인가?

우선 세대별 차등보험료는 지난해 제5차 재정계산위의 21차례 회의와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년간 운영된 1, 2기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의 26차례 회의에서 단 한 번도 논의한 적이 없는 안이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 뜬금없이 두어줄 언급된 것이 전부다. 그후 3기 연금특위가 실시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는 아예 시민대표단에게 물어볼 의제로 채택조차 하지 않았다.

자동안정장치는 제5차 재정계산위에서 논의하기는 했지만 반대 또는 시기상조 의견이 많았다. 연금특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정부 계획안에는 자동안정장치의 해외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도 사회적 논의를 하면 좋겠다’ 외에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게다가 이 역시 공론화에서 의제로 채택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대통령이 말하는 세대별 차등보험료나 자동안정장치는 모두 재정계산위의 21차례, 국회연금특위의 26차례 회의에서 한 번도 논의한 적이 없거나, 논의했지만 반대 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던 안들이자 공론화에서는 아예 의제로 채택조차 하지 않은 안들이라는 것이다. 재정계산위와 연금특위에서 논의한 많은 내용이 있고 공론화에서 결론 내린 많은 내용이 있는데 그런 것은 모두 제쳐놓고 굳이 이런 내용을 연금개혁안의 핵심 내용에 포함시키는 대통령과 정부를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청개구리’라고 할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은가?

개혁의 방법과 관련해서도 정부 이야기는 이상하다. 국정브리핑 전 주에 정부는 세대별 차등보험료와 자동안정장치를 거론하면서 “구조개혁을 완성한 최초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대별 차등보험료는 세대별로 보험료 인상 속도를 달리할 뿐 결국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고, 자동안정장치는 연금액을 깎는 것이다. 즉 ‘더 내고 덜 받는’ 안이어서 모수개혁이지 구조개혁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연금개혁 역사에서 구조개혁을 최초로 실시한 정부는 참여정부다. 참여정부는 2005년에 퇴직연금, 2007년에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의 전신)을 도입해 우리나라 연금개혁에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이룬 최초의 정부다. 그리고 모수개혁을 최초로 성공시킨 정부는 국민의정부다. 두 번의 연금개혁은 모두 민주당 집권기에 이뤄졌다. 일부 언론은 정치권을 싸잡아 연금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필자는 민주당 정부의 연금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 많으나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말해야 한다. 연금개혁의 역사도 잘 모르는 현 정부는 자신들이 집권한 후 진행한 재정계산위·연금특위·공론화의 논의와 결과 모두 무시한 방안만 골라서 연금개혁안의 핵심으로 내놓은 것이다.

국정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구조개혁 방안으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소득보장을 향상시키겠다고 했다. 기초연금은 현재 물가 추세대로라면 가만히 있어도 40만원에 가깝게 될 것으로 보여 개혁이라 하기 어렵다. 또 통계청 연금통계를 보면, 국민연금은 가입률 91%에 수급률이 53%이지만, 퇴직연금은 가입률 31%에 수급률은 0.2%에 불과하고, 개인연금은 가입률 19.2%에 수급률은 4.7%에 불과하다. 가입률과 수급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세대별 차등보험료로 세대 간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자동안정장치로 급여를 삭감하려 하면서, 국민연금보다 훨씬 고소득층·정규직 중심 가입이고 수급률은 비교도 되지 않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는 세제 혜택까지 주어 노후보장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는 실현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정책적 합리성도 결여한 것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준다는 세제 혜택을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지원으로만 돌려도 세대 간 형평과 함께 계층 간 형평까지 실현할 수 있다.

정부는 중심 노후보장 제도인 국민연금의 세대 연대 원리를 흩트리고 연금액도 삭감하는 청개구리 같은 짓을 하고, 비 오는 날 국민연금이 물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국민의 몫일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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