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향료 기업이 찜한 韓 스타트업 ‘본작’… “세계 시장서 가치 인정 받을게요”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4. 9. 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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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셀바티코’ 출시한 본작 배형진 대표 인터뷰
아시아 기업 최초로 프랑스 전통 향료 기업 로베르테와
2년 동안 하이엔드 향수 공동 개발해 국내 시장 출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

“향수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로레알, 에스티로더처럼 향수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1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조향 기업 로베르테. 로베르테는 향료 제작에 필요한 식물 재배부터 향료 추출, 조향까지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세계 유일한 기업으로 바이레도, 불리 등의 유명 글로벌 럭셔리 기업에 향료를 공급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고 전통 있는 기업인 만큼 로베르테는 협력 기업을 고를 때 신중하다. 많은 돈을 준다고, 혹은 유명한 기업이라고 해서 로베르테의 향료를 받을 수 없다.

로베르테의 마음을 사로 잡은 본작
배형진 본작 대표가 로베르테와 함께 개발한 핸드크림, 향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본작]
깐깐한 로베르테의 선택을 받은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로베르테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하이엔드 향수를 개발한 ‘본작’이 그 주인공이다. 본작은 2022년 7월, 로베르테와 함께 개발한 핸드크림과 프랑스 리빙 헤리티지 컴퍼니인 프로벤디와 협업한 리퀴드솝(액상비누)을 출시했다. 금세 입소문을 탔고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에 매장을 시작한 데 이어 일부 제품은 현대백화점이 VIP 고객에게만 제공할 수 있도록 독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로베르테와 함께 개발한 향수 라인 ‘되찾은 시간’을 국내 시장에 내놓았다.

배형진 본작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와 품질로 겨룰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라며 “셀바티코에서 출시한 4가지 향수는 로베르테와 함께 만든 첫 번째 제품 라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을 전공한 배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의류 디자인 분야에서 주목받을 만한 성과를 냈다. 서울디자인재단 콩쿠르에서 최고 디자이너로 뽑혔으며 한국패션산업협회의 지원을 받아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패션협회 등이 선정하는 ‘50인 디자이너’에 뽑혀 이를 계기로 디자인한 옷을 여러 나라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배 대표는 “내가 만든 옷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에 공장을 확보해 옷을 만든 뒤 한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라며 “주요 대기업 홈쇼핑을 중심으로 납품하며 사업을 키워나갔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4계절이 있는 만큼 1년에 네 차례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납품해야 했다. 배 대표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제품을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고 싶은데 유행을 좇는 의류 사업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라며 “의류 사업을 하면서 이러한 제품이 무엇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당시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던 향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6개월의 구애 … 로베르테와 2년 동안 R&D
프랑스 그랑스 지역에 있는 로베르테의 향료 농장에서 배형진 본작 대표(가운데)가 로베르테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본작]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3년 4400억원 수준에서 2019년 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2025년에는 98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배 대표는 “국내 향수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아직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프랑스의 유명 장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국내 니치 퍼퓸과 바디케어 시장에서 돋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결심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배 대표는 곧장 사업기획서를 만들고 프랑스의 향료 기업 로베르테에 연락했다. 1850년대 설립된 로베르테는 향수의 원료가 되는 향료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잎을 따서 공장으로 보내 원액을 추출한다. 이 원액을 잘 조합해 향수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향기가 오랜 기간 유지되고 여러 향이 조화롭게 섞이는 데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로베르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험과 기술을 가진 기업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로베르테와 협업을 원하는 기업이 많은데 주로 유럽, 미국 기업과 협력을 했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로베르테와 함께 향수를 출시한 기업이 없다.

배 대표의 연락에 당연히 로베르테는 답이 없었다. e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해 봤지만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배 대표는 “로베르테가 날 받아주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자는 생각에 끝없이 연락했던 것 같다”라며 “6개월 동안 수백번의 연락을 했는데 어쩌다 로베르테 마케팅팀 담당자와 전화 연결이 됐고 우연히 화상 미팅이 잡혔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오프라인 미팅이 잡혔고 배 대표의 기획안 발표에 로베르테는 마음을 돌렸다. 배 대표는 “협업이 진행되고 날 받아준 이유에 대해 로베르테에 물어보니, 제안한 브랜드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공감됐고 동양의 작은 기업이 열정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을 높이 샀다. 이 사람은 진짜 결과를 만들어 낼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본작은 로베르테와 함께 기획 초기 단계부터 2년간 공동으로 준비하고 ‘포뮬러(향수의 조합을 정하는 일)’를 개발한 첫 아시아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 프랑스 등 진출 도전 … “세계 무대서 인정받겠다”
본작이 로베르테와 함께 개발한 향수 ‘셀바티코’ [사진=본작]
본작은 프랑스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지난 2022년 7월, 핸드크림과 리퀴드솝을 출시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는데 소비자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이 과정에서 주요 백화점 관계자들이 방문했고 백화점 내 팝업 스토어를 제안했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입소문 만으로 1년 반 동안 주요 백화점과 행사에서 팝업 스토어만 20여차례를 열었다. 주요 백화점 입점도 이때 이뤄졌다.

핸드크림과 리퀴드솝의 반응은 좋았지만 배 대표는 로베르테와 함께 만들 향수에 집중했다. 올해 초 향수가 출시되기까지 배 대표는 매일 아침 향료 샘플을 기반으로 어떠한 향수를 만들지 로베르테와 고민했다. 로베르테와의 협력을 위해서는 향수에 대한 지식도 필요했기에 관련 서적만 수백만 원 어치를 구매해 읽고 또 읽기도 했다. 이후 마치 연금술사처럼 향수를 기획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향료를 고르고 조합하는 일을 로베르테와 함께 했다. 그렇게 올해 초 첫 향수가 출시됐다.

본작의 첫 번째 향수 라인은 4가지 제품으로 구성됐다. 각 제품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화가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표현한 향수인 ‘수 보아 드 생제르망’은 가을 숲 향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제품의 모티브가 된 미술작품이 생제르망 숲 밑에서 그려진 만큼 이를 향수로 구현한 것이다. 배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향수 브랜드가 가지지 못한 향을 끌어내기 위해 수많은 기획을 해왔다”라며 “그렇게 만든 향수가 앞으로 계속해서 출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출시 이후 매월 판매액은 전월 대비 평균 38%씩 증가하고 있으며 가능성을 본 로베르테는 그룹의 투자회사를 통해 본작에 지분 투자까지 마무리 지으며 세계 시장 공략을 돕는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본작은 현재 프리시리즈A 투자 라운딩 중인데, 이번 투자금은 국내 시장의 성장과 해외 진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배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향수 전문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셀바티코를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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