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데뷔 20주년요? 돌이켜보니 운 밖에 없었죠"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비밀번호 486', '혜성', '오늘 헤어졌어요', '퍼레이드',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우산'…. 가수 윤하를 떠올리면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들이 쏟아진다. 2004년 데뷔한 이래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온 터라 세대별로 그를 기억하는 곡들이 다를 정도다. 그런 그가 드디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맞이해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를 발매했다는 윤하는 인터뷰 시작과 함께 "속이 시원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2일 마이데일리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윤하를 만나 '그로우스 띠어리'와 함께 그의 발자취를 톺아봤다.
'그로우스 띠어리'는 윤하가 약 1년 간 준비한 정규 앨범으로, 지난 2021년 11월 발매한 정규 6집 '엔드 띠어리(END THEORY)' 이후 2년 10개월 만에 내놓는 '띠어리(THEORY)'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다.
앞서 윤하는 이미 '띠어리' 시리즈를 통해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정규 6집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사건의 지평선'이 멜론, 벅스, 지니뮤직 등 각종 음악 차트 1위는 물론 '인기가요'와 '뮤직뱅크' 1위까지 차지하며 인기몰이를 한 것.
"TOP 100차트에 들어갔을 때에는 안도감도 들고, 우쭐한 느낌도 들었어요. 그런데 1위 안착도 오래하고 그러니까 무섭기도 하더라고요. '여기까지는 내가 노력한 걸로 얻어지는 성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서 부채의식을 많이 느꼈고, 부담감도 많았어요. 이번에도 1위를 했으니 다음에도 1위를 해야한다는 것보다는 '내가 그만큼 (노력을) 했나? 물론 열심히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1위를 할 정도였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때부터는 조금 초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도 '난 빨리 다음 거를 해야한다'고 했죠."
이 과정에서 회사의 배려로 잠시 호주에 다녀왔다는 윤하. 그렇게 여행하던 도중 만난 나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다.
"은하수를 보러 간 여행이었는데, 맹그로브 나무라는 신기한 나무가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으니 내게 신비로운 주제로 다가왔어요. 이 나무는 염수를 먹고 자라는 나무인데, 몇 번의 밀물과 썰물을 겪으며 바다 생물들이 터전을 이룰 수 있도록 기꺼이 본인의 몸을 내어주고 많은 희생을 해요. 이 친구가 몇 번이고 소금물에 담금질을 당하면서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나무의 삶은 어떨까. 만약 여기에 인격을 부여하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하다 보니 제가 느끼는 것들이 작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부담을 내려놓고 해야 할 일로 돌아올 수 있었죠. 그래서 그때 그 맹그로브 나무에게 너무 고마워요."
그의 말처럼, 1번 트랙 '맹그로브'에서 출발하는 신보에서 윤하는 소녀와 개복치, 작고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여정을 풀어낸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윤하의 취향이 느껴지는 록 넘버로, 타인의 평가나 잣대가 아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개복치라는 소재와 함께 전한다.
"수많은 어종 중에서 개복치가 왜 'sun fish'일지 궁금했어요. 찾아보니 수면 위에 떠올라 해파리를 먹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생각보다 대단한 친구였어요. 보통의 물고기들은 본인의 (활동) 범위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는 수면 위부터 심해 800m까지 왔다갔다하며 살기 때문에 심해 생명체가 가진 발광체의 기질도 갖고 있어요. 그런 일련의 것들을 보며 이 친구가 바다의 태양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하늘같이 드넓고 대인배같은, 또 뭐든지 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죠. 하늘을 지향하지 못한다면 하늘을 닮은 바다 정도는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다의 태양 정도는 되고자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곡을 만들게 됐어요. 또 개복치가 20년 정도 산다고 하니, 20이라는 숫자가 저와 운명처럼 맞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러면서, 이번 앨범에 대한 깊은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냈다.
"영혼도 갈고, 체지방도 갈고, 근육도 갈고 정신도 갈고. 조금씩 다 갈았어요. 이번 앨범은 화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6집 앨범이 '인셉션'처럼 무의식에 들어와서 듣는 느낌이라면 이번 앨범은 바다 안에서 듣는 느낌이길 바랬어요. 이게 판타지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요."
지난 1일 데뷔 20주년을 맞은 윤하. 데뷔 후 쉴새없이 달려오며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에게 20주년이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그는 의외로 담백한 답을 내놨다.
"저는 잘 풀려서 너무 다행인 케이스에요.(웃음) 진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운 밖에 없었죠.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스무 살에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어른이라고 술도 마셔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죠. 가수 20주년도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연차가 된 것 같고 중견의 느낌이 날까봐 걱정도 되지만, 55주년도 넘긴 조용필 선배님께는 제가 한없이 아기같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 이걸 만끽하는 것이 20주년에 맞는 모습인 것 같고, 또 지나다 보면 '아, 청춘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하의 커리어에서는 이제 시작점이라고 느껴져요."
다만, 2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여유를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전에는) 염세적이었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해서 더 그랬어요. 혼자 답을 내리려고 했고, 그게 뭔가 중 2병처럼 뮤지션의 숙명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이 작은데, 그걸로 답을 내리려니 뭐가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 지금 대표님께서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 같아요. (대표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소통법을) 습득하고 밖에 나가서 적용해보니 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되니 너무 신이 났죠. '답을 내가 내리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그냥 몸을 맡기면 되는 거였고 아직 난 모르는게 많고 알면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찾은 용기를 통해 윤하는 "재밌게 하자", "많이 놀러 다니자"는 신조를 가질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20주년을 '두 번째 스무살'이라고 생각하니 많이 설렌다며 웃음을 터뜨린 윤하에게서, 마음껏 바다 속을 유영하고 있는 이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많이 느끼고, 새로운 생각들을 쉬지 않고 해서 그걸 여러분들께 들려드리는 것이 (아티스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노래를 이어나가는 가수가 될게요."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