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역주행 1위 무섭고 초조…몸값만 올릴 게 아니었죠”[EN:인터뷰①]
[뉴스엔 황혜진 기자]
가수 윤하가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 1위 후 달라진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하는 9월 1일 오후 6시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정규 7집 앨범 'GROWTH THEORY'(그로우스 띠어리)를 발매했다. 1년여 동안 공들여 빚은 끝에 데뷔 20주년 당일 든든한 음악적 동반자 홀릭스(윤하 공식 팬덤명)들에게 건넨 선물이다.
2일 오전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뉴스엔과 만난 윤하는 "앨범을 내서 속이 시원하다. 1년 동안 작업했다. 진짜 이번에는 꼬박 시간을 들여 작업했다. '사건의 지평선'이 잘된 덕분에 회사에서도 양해를 많이 해 주셨다. 너무 많은 스케줄에 치이지 않게 제가 작업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셔서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제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화려한 앨범이 될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2022년 3월 발표한 정규 6집 리패키지 앨범 'END THEORY : Final Edition'(엔드 띠어리 : 파이널 에디션)이 "영혼을 갈아 만든 앨범"이었다면 정규 7집 앨범 'GROWTH THEORY'는 "영혼도 갈고 체지방도 갈고 근육도 갈고 정신도 간 앨범"이다.
"조금씩 다 갈았아요. 중간에 호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충전을 많이 했어요. 전 여행으로 충전하는 편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죠. 자연을 보며 많은 감명을 얻었어요. 그래서 제일 처음 작업한 곡이 '맹그로브'예요. 맹그로브 나무를 처음 접하고 영감을 얻었고, 이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죠."
신보는 총 10곡의 자작곡으로 구성됐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윤하의 취향이 물씬 느껴지는 록 넘버다. 윤하는 개복치(SUNFISH)라는 소재를 활용해 타인의 평가나 타인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 치열히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수록곡 완성도도 타이틀곡 못지않다. 왈츠를 연상시키는 '맹그로브', 강렬한 록 사운드로 이뤄진 '죽음의 나선',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케이프 혼', 아코디언·휘슬·장구·꽹과리 소리를 조합한 '은화', 경쾌한 리듬의 '로켓방정식의 저주', 시니컬한 보컬로 가창한 '코리올리 힘', 몽환적 사운드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라이프리뷰', 이별과 기억에 대한 '구름의 그림자', 스스로 용기를 얻는 내용의 '새녘바람'까지 10곡의 웰메이드 트랙이 포진해 있다.
윤하는 "가수로서 하고 싶은 걸 계속 찾아 나가고 있다. 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실제로 다른 게 많더라. 이번에 하고 싶은 게 체조경기장 입성이었는데 했으니 못해도 한두 번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사이즈가 좀 큰 작업을 해 보고 싶다. 보통 윤하 앨범 하면 멜론에 락, 알앤비 이렇게 기재가 되는데 이번에는 그냥 록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음악에 과학을 접목해 호평받았던 윤하의 시선은 바다와 다양한 생물에게로 향했다. 윤하는 소녀와 개복치, 그리고 작고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장대한 여정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여정의 길목마다 마주한 다양한 주체들과 교감하며 깨닫는 소녀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윤하는 전작과의 차별점에 대해 "좀 더 화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바다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믹스를 하는 데 있어서도 보컬을 밀지 않고 매트하게 가져가는 방식을 사용한 부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작 'END THEORY'가 태양계에 관한 음반이라면 신보 'GROWTH THEORY'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의 안과 밖을 힘차게 탐험 중인 윤하는 "지난 앨범 리패키지부터 세계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주인공 소녀에 절 투영할 수도 있겠고 들으시는 분들이 투영하실 수도 있다. 계속 교감했던 혜성이 블랙홀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절벽 끝에 있던 소녀가 현실을 자각하며 시작되는 스토리다. 언제나 그런 것들을 그리워만 할 순 없으니까. 현실로 돌아와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다 절벽 위에 있고, 고민을 하다가 맹그로브 나무를 보며 용기를 얻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타이틀곡 제목으로 쓰인 태양물고기의 다른 이름은 개복치다. 윤하는 "뭔가 제 감동 포인트는 그런 데 있는 것 같다. 개복치가 되게 나약한 존재고, 수족관에서도 50일 만에 폐사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나 밈 화 돼 있는 건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때부터 이 친구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왜 'SUN'을 달고 있는지 찾아보니까 수면 위에 종종 올라와 일광욕을 하는데 사실 일광욕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있더라. 몰랐던 것도, 오해하고 있던 것들도 많더라. 수명도 성체가 된 후 20년 정도 산다고 하는데 그 20년이라는 숫자가 자꾸 저와 운명적으로 결착돼 있는 느낌도 들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친구가 바다의 태양 같은 존재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한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괴로운 순간들도 많잖아요. 하늘을 지향하지 못하더라도 하늘을 닮은 바다 정도는 지향할 수 있지 않나, 바다의 태양 정도는 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죠."
가수 윤하와도 일정 부분 닮아 있는 존재다. 윤하는 "수면에서부터 심해까지 헤집고 다니는 그 꼬라지는 닮은 것 같다"며 웃었다. 윤하는 "저도 욕심이 생기면 파고드는 느낌이 있다. 발라드부터 록까지. 힙합은 해 보지는 않았지만 피처링도 해 보고 패셔너블도, EDM도 해 봤다. 그러다 보니까 윤하를 하면 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세대마다 답이 갈리더라. 딱 하나로 잘 완성이 안 되고. 물론 '사건의 지평선'이 잘되면서 중간으로 모이긴 했지만. 항상 어느 장르에서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뿌리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개복치 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번 신보 노랫말은 대부분은 한글로 이뤄졌다. 영어가 난무하는 요즘 히트곡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윤하는 "어렸을 때 팝스타와 록스타를 되게 동경했다. 어떨 때는 '난 왜 해외에서 안 태어났지?', '난 왜 댄서블한 음악이 많은 한국에서 태어나 더 나아갈 수 없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원망이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열려 BTS(방탄소년단)도 잘 됐고, 많은 분들이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그냥 이런 음악이 있다고 함께 들어주시는 시대가 됐다. 이젠 그냥 시대가 달랐던 걸로 인지를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차별점을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타고나지 못했던 환경이나 부러워했던 부분이 있었지. 근데 이젠 너네도 한 번 부러워해 봐라!' 이런 거였죠. '이런 예쁜 말들이 너네한테 있어?' 그런 마음도 있어요. 비단 저만의 매력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나라, 한글의 매력은 제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여기에 자부심을 갖고 작업하자고 생각했죠. 로켓은 발사체라고 쓰기는 좀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부득이하게 쓴 영어는 있어요. 뉘앙스를 살릴 때 필요한 부분은 쓰곤 하지만 가능하면 한글로 가사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4번 트랙 '은화' 작업 비화도 공개했다. 이 곡에는 윤하 친동생인 고윤진 작가가 공동 작사가로 참여했다. 윤하는 "'은화'는 제 동생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됐다. 몇 줄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작가를 하는 동생에게 좋은 거 생각나는 거 있으면 몇 줄이라도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봐 티키타카 끝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장구와 꽹과리 등 우리나라 전통 악기를 접목한 다채로운 소리도 인상적이다. 윤하는 "'은화' 같은 경우 제 아이디어로만 된 곡은 아니다. '맹그로브' 등은 제 곡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은화'는 저 혼자 만들 수 없었던 곡이다. 장구, 꽹과리 소리도 들어갔다. 소리를 만들어 주신 분들이 실연자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했다. 재밌게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윤하는 2022년 3월 발매한 정규 6집 리패키지 앨범 'END THEORY : Final Edition'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으로 차트를 부지런히 거슬러 오르다 같은 해 11월 초 음원 차트 멜론 TOP 100(톱 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발매 222일 만의 1위였다.
이에 대해 윤하는 "TOP 100에 들어갔을 때는 안도감도 있었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래도 들어주시긴 하네'라고 생각했다. 우쭐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근데 계속 올라가니까 무섭더라. 1위에 안착해 오랫동안 있고 했으니까. 여기(1위)까지는 내가 노력한 것으로 얻은 성과가 아닐지도 모르고 이건 운의 영역이구나 느꼈다. 그런 부채 의식에서 온 부담감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열심히는 했지만 1위를 할 정도로 그렇게는 했나 싶더라"고 말했다.
이어 "1위 했으니 이번에도 1위를 해야지 그런 마음이 아니라, 다음에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최소한 이렇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뭐지 싶었다. 그런 고민들에 빠졌고 약간 그때부터는 초조했던 것 같다. 이걸 누리고, 불러준다고 다 가고, 몸값을 올릴 게 아니라 빨리 전 다음 거를 해야 한다고 회사에도 말씀드렸다. 보통 회사와 비즈니스 관계다 보니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너무 흔쾌히 이해를 해 주셨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시간적 여유를 주셔서 호주 여행을 갔다"고 밝혔다.
"은하수를 보러 갔는데 신비한 맹그로브 나무가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으니까 저한테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왔죠. 염수를 먹고 자란 나무라고 하더라고요. 몇 번의 썰물과 밀물을 겪고, 바다 생물도 왔다 가고 뭍 생물도 왔다 가는데 터전을 내주기 위해 희생하고 본인을 내주는 존재예요. 움직일 수 없는 이 나무의 운명은 어떨까, 인격을 부여한다면 어떨까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느끼던 것들이 되게 작게 느껴졌어요. 물론 1등을 했다고 신났지만 제가 해야 할 일로 돌아오자 생각했죠. 그래서 그때 여행이 너무 고마워요."
2017년 12월 정규 5집 'RescuE'(레스큐)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과거 히트곡에 대한 부담이 크다. 내 히트곡은 10년 전 발표한 곡들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노래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사건의 지평선'으로 그러한 부담감을 좀 덜어냈냐는 물음에 윤하는 "처음에는 진짜 많이 부담됐고 그 여행 이후부터는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 이게 언제까지 보일지 모르니까 빨리 기록을 내서 뭔가의 형태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 이후부터 엄청 재밌게 작업을 했다"고 답했다.
'천 번 일어서면 천 번 넘어졌던/빛을 내지 못 하던 날들이/이야기의 도약이 되어'라는 신보 수록곡 '새녘바람' 가사처럼, 윤하에게도 암흑 속에 잠긴 듯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2012년 7월 정규 4집 'Supersonic'(슈퍼소닉) 발매 후 2년여 동안 겪고, 종국에는 데뷔 20주년 히스토리 중 하나가 된 음악적 슬럼프였다.
윤하는 "새로운 레이블을 만들어 발매했던 앨범이 ''Supersonic'이다. 물론 평단에서 좋은 평가도 받고 뭔가 해낸 것 같았다. 근데 그러고 나서 그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서로 갈아내며 작업했지만 보상이 바로 오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흩어지게 됐는데 지금 다 잘 살고 있다. 팀이 깨져버리니까 그때 우울감이 시작됐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고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부족했는데 뭐가 부족했지 그런 생각을 하다 끝도 없이 내려가게 됐다"고 회상했다.
정규 5집 'RescuE'는 제목 그대로 가수 윤하에게 구원이 된 앨범이었다. 윤하는 "'RescuE'를 내고 조금씩 회복하게 됐다. 이후 지금의 대표님(C9엔터테인먼트)을 만나게 됐다. 제가 쭉 한 회사에 있었는데 그 대표님이 저희 회사를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대표님에게 '사기당하시는 거예요. 왜 사세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니야. 잘할 수 있어'라고 해 줬어요. 속는 셈 치고 3년 정도 해 보자고 시작했던 게 벌써 7년이 지났어요. 그것도 또 운이라고 생각해요. 참 여러 운이 겹쳐 온 것 같아요. 4집이랑 5집 사이에 제일 음악적 슬럼프가 심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루비룸 친구들한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거였죠. 새로운 탑 라이닝 형태로 곡 쓰는 작업을 시작한 게 지금까지 확장이 됐네요."
20년간 부단히 좋은 음악을 세상에 내놓은 비결로는 호기심을 꼽았다. 윤하는 "제 원동력은 호기심인 것 같다. 탐구하는 것. 지식의 영역을 노다지 같다고 느낀다. 제가 고등학교를 안 나왔고 검정고시를 봤다. 사실 시험 보려고 공부한 거 말고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뭔가 배우면서 즐겁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음악 말고는 없었다. 요즘 알고리즘에 죄다 그런 것만 뜬다. 학자 분들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알고 계시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 작업할 때 비유하기도 좋다. 요즘 리스너 분들도 엄청 수준이 높으시니까 믿고 그렇게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인터뷰②에서 계속)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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