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아득함과의 전쟁 [똑똑! 한국사회]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석사 논문을 쓰기 전 디지털성폭력 지원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나의 일은 나에게 할당된 불법촬영물을 일일이 검색한 뒤, 게시물이 발견되면 이를 삭제해달라고 사이트 운영자에게 ‘읍소’하는 것이었다. 불법촬영물의 검색과 삭제는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방식과 같은, 그러니까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알아서 피해자별 얼굴을 식별하고, 게시된 사이트를 목록화하고, 자동으로 삭제 요청을 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접수된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하나하나 쪼개어서, 그 쪼개어진 영상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개별 검색하여, 게시된 사이트의 주소를 일일이 엑셀에 정리해둔 다음, 채증을 위해 사이트를 갈무리해두고, 사이트 운영자 메일이나 문의 채널을 찾아내 “이 영상은 성범죄 촬영물이니 제발 삭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삭제되지 않는다면 관련 법령에 따라 해당 사이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하여 보내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이런 일을 하루에 100건, 200건도 했다. 나는 이 절차를 ‘고도로 발달한 것 같으나 실은 곰돌이 인형 눈 붙이기와 다를 바 없는 가내수공업형 불법촬영물 삭제 프로토콜’이라고 이름 붙였다.
디지털성폭력의 가장 큰 적은 ‘아득함’이다. 이 넓은 인터넷 세계에서 불법촬영물이 어디까지 배포된 것인지는 모니터 앞에 앉은 우리로선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떤 사진은 기어코 찾아내 게시글 20개를 지워도, 다음날은 40개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했다.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는 사이트들은 ‘폭파’를 대비해 동일한 페이지를 여러 도메인으로 복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또, 대다수의 유포 사이트는 모두 외국 서버를 거점으로 했으니, 대한민국의 이름을 빌려 읍소 메일을 보내봐야 그들이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아득함의 무서움은 유포와 복제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최근 대두한 딥페이크 성폭력은 한땐 ‘지인능욕’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범죄로 꾸준히 존재해왔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작자가 ‘수제로’ 이미지를 오려 붙여 합성하느라 난이도가 높고 시간이 걸렸던 것이,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오만가지 형태로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는 차이가 있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사진만 구할 수 있다면 피해자를 무작위로 고를 수 있다는 것도 무서운 점이다. 이건 인공지능이 만든 ‘페이크’니까, 진짜 사람을 가해한다는 죄의식에서도 의도적으로 멀어질 수도 있다. 딥페이크 제작은 가해자들에게 ‘네 사진 전부 인스타그램에서 긁어모은 다음 네가 수치스러워할 영상물을 100개쯤 제작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근데 뭐 어때, 그게 진짜 너도 아니잖아’와 같은 권능감을 선사하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딥페이크는 디지털성폭력물 재생산 주기를 획기적으로 당겼다. 그 속도를 몇명 되지도 않는 지원기관 직원들이 따라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아득함을 이기지 못하고 직원들이 떠나갔다. 이 자리는 다시 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딥페이크 대화방 이용자 수가 22만명에 이른다는 것은 ‘과대평가된 위협’이라고 강조하며, 텔레그램의 전체 한국 사용자 비율을 따져봤을 때 실제론 726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사용자 수가 22만명이든 726명이든,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이준석 의원에게 묻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726명이 아니라 7.26명이 모여서도 20만개를 만들 수 있고, 지역을 불문하고 저 멀리까지 무한으로 재생산하며 배포할 수 있으며, 어쩌면 인터넷 한구석에선 삭제되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을 범죄. 그게 디지털성폭력의 본질인데 22만명이든 726명이든, 하물며 10명이라고 이 범죄가 가진 능력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생각했을 때 몇명이 ‘과대평가’가 아닌 적정선이 될 수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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