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탄소중립 R&D, 산업수요 기반으로 재정립하자
수소연료전지, 수소자동차가 상용화되면서 수소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생산·사용하는 수소경제 시대 대응을 위한 산업계 움직임도 분주하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는 기업 간담회, 대국민포럼 등을 열어 수소경제 및 탄소중립 기술에 대한 기업인들의 의견을 조사한 바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전략기술과 탄소중립산업 핵심기술, 그리고 기후대응기금의 다양한 연구개발(R&D) 사업들에 대해 산업계의 인식과 체감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가전략기술에서 탄소중립과 직접 연계되는 분야는 수소로, 수전해수소, 수소저장·운송, 수소연료전지 및 발전이 해당된다. 간접적으로는 저전력 반도체, 이차전지 재사용·재활용, 전기·수소차 등을 꼽을 수 있다. 탄소중립산업 핵심기술에서는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대상으로 수소환원제철, 대체공정가스 등의 혁신적 대형기술 중심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기획전문 기관을 중심으로 민간수요조사와 연구기획을 통해 기존 사업의 내역사업 또는 별도의 신규 사업을 통한 연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탄소중립 관련 국가전략기술, 탄소중립산업 핵심기술, 이 밖의 기후대응기금 사업 대부분은 산업기술에 가깝다. 과학기술을 산업 응용으로 전환해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적 성과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은 산업 수요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당장 투자 여력이 부족하거나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성이 높아 기업이 기술 개발을 주저하지만, 그럼에도 미래 산업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전략기술과 탄소중립산업 핵심기술은 특정 분야를 한정하고 있어 이 외의 분야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국가전략기술의 수소분야는 수소생산에 있어 수전해수소만, 수소 활용에서는 연료전지 및 발전에 치중돼 있다. 탄소중립산업 핵심기술은 반드시 4대 업종에 적용돼야 한다. 다른 개별 사업이나 과제로 추진되고는 있지만, 사업이 파편화돼 수행될 경우 검토와 관리의 중복, 성과확산 미흡, 탄소중립 최종목표 희석 등의 단점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을 위한 연구 개발은 산업수요기반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 옵션을 바탕으로 산업계 적용을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공급기업뿐 아니라 수혜기업의 수요를 중심으로 현장실증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산업수요 기반의 탄소감축 실증사업이 돼야 한다.
산업계 수요조사를 통해 다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기업들은 수전해수소 외에도 청록수소 개발의 시급성을 언급하고, 연료전지와 더불어 직접연소 기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탄소중립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업종에서 흔히 사용하는 보일러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소경제와 탄소중립 기술개발 모두에서 개발 제품의 테스트베드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업수요기반 탄소감축 실증사업은 다량의 수소공급원을 국내에서 찾고자 하는 수소환원제철 분야가 우선 대상이다. 여기 더해서 수소와 재생에너지원의 안정적 확보, 사용 의무화 규제 예고에 따라 신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는 E-Fuel, 배터리 재생 공정의 친환경화, 기존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뛰어넘는 재생에너지원, 무탄소 연·원료 등이 대거 적용되는 공정의 디지털 전환이 해당된다. 아울러 기업이 개발한 혁신제품을 충분히 사전 테스트할 수 있는 공공활용 기반형 실증과제도 포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 부처와 소관 부서, 공공기관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고유임무형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추진되고 있는 탄소중립 사업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존 국가전략기술이나 탄소중립 핵심기술 외 소외된 영역을 다루되 중복성을 피하고, 조속한 현장실증이 어려운 원천형 기술의 경우 기존 트랙을 유지하면서도 산업수요기반의 실증사업이 새롭게 구성된다면 탄소중립이라는 국가 고유임무를 보다 현실성 있고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지역산업혁신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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