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응급실이 응급상황"…'대장암 응급환자마저 발길 돌려'

강원CBS 구본호 기자 2024. 9. 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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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강원대병원 2일부터 응급실 성인 야간 진료 운영 무기한 중단
암환자에 장거리 내원 환자들 '운영 종료' 통보에 허탈감
건국대 충주병원, 세종 충남대병원도 응급실 운영 일부 중단
의사단체 "추석 기점 응급실 닫는 대학병원 늘 것"
정부 "의료붕괴 우려할 상황 아냐" 군의관 등 대거 투입 대응
2일 밤 굳게 닫힌 강원대병원 응급의료센터 문 앞. 구본호 기자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서 사정을 해야 진찰을 해주는 건지 답답합니다" "아프지 말자라는 말이 안부인사가 됐어요"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공백에 따른 성인 야간 진료 운영 중단 첫 날인 2일 밤 강원대병원 응급실.

대기 환자와 진료 순서를 안내하는 응급실 안 모니터에는 1~2명의 환자 이름만 적혀있었고 자녀를 안고 진료를 보러 온 부모들만 간혹 눈에 띄었다.

굳게 닫힌 응급실 문 앞으로는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충원시까지 한시적으로 야간 진료를 제한하오니 환자 및 보호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최근 5명의 전문의 중 2명이 휴직하면서 24시간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강원대병원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성인 야간 진료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강원대병원이 응급실 일부 운영을 중단하는 건 개원 이래 처음이다. 추석 연휴 기간과 소아·청소년과는 정상 진료하기로 했다.

2일 밤 성인 진료가 중단된 강원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한 환자가 들어가는 모습. 구본호 기자


이날 오후 7시 40분쯤 대장암 환자인 60대 남성이 요양시설 간호사와 함께 강원대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운영 중단 통보를 받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통원 항암치료를 받던 중 외래 진료에서 암 전이 사실을 받았고 이날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 남성은 "이 곳에서 진료를 받아왔는데 갑자기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싶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대장암 환자가 떠난 지 2시간여 뒤, 한 모녀가 응급실을 급히 찾았지만 성인 진료 중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다른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이 다리를 다쳐 병원에 왔는데 야간 진료가 안된다며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이나 인성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소방당국은 응급실 운영 중단을 고려해 한림대춘천성심병원과 인성병원, 국립춘천병원 등으로 응급 환자를 이송 조치해 구급차량들이 강원대병원을 찾는 혼선은 없었다.

2일 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으로 구급차량이 진입해 환자 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본호 기자


반면 다른 병원 응급실들은 환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상대적으로 경증 환자들은 진료 자체를 받지 못해 불만을 쏟아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앞에서 만난 한 여성은 강원대병원을 거쳐 이 병원 응급실에 왔지만 중증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료를 받지 못했다. "위급한 환자가 아니라서 진료를 받지 못했다. 저 같은 사람은 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하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60대 여성은 두통과 무기력 증세로 40분 넘게 떨어진 강촌에서 찾아왔지만 진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 응급실을 찾아 떠나야 했다. "시내 병원도 다 닫았고 응급실도 받아주지 않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냐.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서 사정을 해야 진찰을 해주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2일 밤 춘천에 위치한 인성병원 응급진료실 앞. 구본호 기자


춘천에 위치한 인성병원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병원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거나 모여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다.

응급실 운영 중단 사태로 시민들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춘천에 사는 이한영(58)씨는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모르는 상황에서 응급실이 문을 닫는 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다. 주변에서는 '아프지 말자'라는 말이 안부 인사일 정도"라고 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강대 응급실 산모는 받아주나요?' '정말 문을 닫은 건가요?' 라는 등 지역 응급실 운영 상황을 묻는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크게 확산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일주일 정도 지나봐야 이번 사태에 대해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환 기자


강원대병원을 비롯해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기로 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과 세종 충남대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국대 충주병원의 경우 지난 1일부터 야간 응급실 진료에 이어 주말과 공휴일 진료 중단에 나섰으며 분산 수용된 환자들이 인근 충주의료원으로 대거 몰리면서 의료대란 여파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세종 충남대병원 응급실도 전문의 15명 가운데 8명이 사직하면서 오후 6시 이후 성인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

의사단체들도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비판하며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실 운영이 비상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발표와 다르게 이미 많은 응급실은 정상 진료를 못하고 있다"며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 진료가 안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병원이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 불가능 14곳, 흉부대동맥수술 불가능 16곳, 영유아 장폐식시술 불가능 24곳으로 집계됐으며 응급실 운영이 일부 중단된 3곳의 병원을 포함해 8곳의 병원이 응급실 닫거나 닫으려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응급실 운영 차질 우려에 정부는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운영난을 겪는 응급실에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집중 배치할 계획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전체 409개 응급실 중 99%인 406개소는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으며 6.6%(27개소)가 병상을 축소 운영 중이다.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문의와 일반의, 전공의를 포함한 의사는 평시 대비 73.4%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일각의 주장처럼 응급실 근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전공의 공백으로 응급실 인력이 감소한 만큼 인력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오는 4일 군의관 15명을 투입하고 9일부터 235명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투입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 대비책으로 "올해 설 연휴보다 400여개소 많은 4천 개소 이상의 당직 병·의원을 지정하고 60개의 코로나19 협력병원과 108개소의 발열 클리닉을 지정해 경증 환자의 지역 병·의원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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