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돼주겠다"며 다가온 낯선 '형'…자립비 가로채고 잠적

김태성 기자 이수민 기자 2024. 9. 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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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홀로서기②] 20세 중증 지적장애인 사기 피해
SNS로 먼저 접근해 여자친구까지 데려와 강제 동거

[편집자주] 보육원에서 자란 장애 아동들은 18세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인생의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범죄의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자립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

사기 피해 이미지.ⓒ News1 DB

(광주=뉴스1) 김태성 이수민 기자 = 선천적으로 인지·적응 수준이 낮은 오주용 씨(20·가명)의 지능지수(IQ)는 58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다.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내용 이해와 표현, 대인관계, 대처 기술 능력이 부족하다.

그는 지난해 8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라던' 경일석(24·가명)과 권성아(나이 불상·가명)를 사기와 준사기, 장애인 학대 관련 범죄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해 4월 14일 전남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퇴소한 지 이틀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너 누군데 나한테 '친추'했냐?'라는 메시지가 왔다.

주용 씨는 왠지 모를 찝찝함에 답장하지 않았지만, 경일석으로부터 음성 전화가 몇 차례 더 걸려 오자 '제가 그랬어요? 누구세요?'라고 결국 답장했다.

이 문자를 시작으로 몇 건의 사사로운 메시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서로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전화까지 하게 됐다.

당시 주용 씨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싶었다. 경일석은 이 얘기를 듣더니 자신의 여자친구인 권성아와 함께 도와주겠다고 했다. 저렴한 운전 면허시험장을 소개시켜 주고 합격까지 두 번이나 시험장에 동행해줬다.

"마냥 고마웠죠. 근데 운전 면허시험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저한테 '너 가족이 없지? 내가 네 가족이 되어줄게. 내가 사정이 있어서 지금 사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공과금을 나눠 낼 테니 너희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는 거예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친한 형, 가족이 생기는 든든한 느낌도 들어 허락했어요."

세 사람의 동거 후 경일석과 권성아는 오주용에게 밥을 차려주거나 방을 치워주면서 환심을 샀다. 그러나 약속한 것과 달리 공과금이나 생활비는 한 번도 분담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사기 피해 이미지.ⓒ News1 DB

경일석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며 주용 씨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타인 대신 소액결제를 해주고 현금을 받는 '소액결제 깡'에 이용했다.

소액결제 한도를 전부 써버린 휴대전화는 그대로 중고 휴대전화 매장에 팔아넘겼다. 이 수법으로 구매와 판매를 반복한 휴대전화만 3대다.

오주용 씨가 잠든 사이 휴대전화로 대출 가능 여부를 조회한 뒤 자신의 생일선물로 대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용 씨는 거절했지만 경일석은 그의 지갑에 있는 신분증을 이용해 몰래 비대면 대출로 300만 원을 빌렸다.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 생계급여(월 100만 원 수준)와 시설 퇴소자 자립정착금(약 1300만 원)도 어느새 전부 경일석과 권상아가 관리했다.

"처음 같이 산 게 4월 중순인데 7월 중순이 돼서야 의심하게 됐어요. 또 그때 알게 된 게 먼저 사회복지시설에서 퇴소했던 비장애인 형 중 한 명이 경일석이랑 친구더라고요. 제가 장애인이라 지원금이 나온다는 걸 알려주면서 접근하라고 한 것 같아요."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조사를 통해 오주용 씨의 총 피해액을 약 2860만 원(통신채무 870만 원+은행 대출 300만 원+인터넷 200만 원+텔레비전 80만 원+가정용 CCTV 90만 원+자립통장 1320만 원)으로 집계했다.

오 씨와 기관은 지난해 8월 광주 한 경찰서에 해당 건을 고발했다. 권익옹호기관의 중재로 경일석과 권성아는 즉시 오주용 씨 집에서 퇴거 조치됐다.

경일석과 권성아는 몇 차례 경찰 조사 출석 요청에 불응하더니 주거지가 분명하지 않아 얼마 전 '수배 대상'에 올랐다.

주용 씨는 얼마 전 통신채무로 인한 '전자지급명령 접수 대상 통보'를 받았다. 이달까지 통신채무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통장 등 모든 재산이 가압류될 위기다.

권익옹호기관의 중개로 찾은 신용회복위원회에서는 '장기 분할납부'를 권유했다. 장기 분할납부가 가능해진다면 주용 씨는 약 10년간 경일석과 권성아가 진 빚을 대신 갚아야 한다.

"3개월 동안 '가족'이 있었던 대가가 너무 커요. 몇천만 원의 빚이 생겼고 그걸 10년 넘게 갚아야 한대요. 형한테 이용 당한 건 난데 왜 피해는 내가 봐야 하죠?"

※ 장애인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 경제적 착취, 유기 또는 방임을 하면 학대 행위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형법, 성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다양한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장애인 학대가 의심되면 1644-8295에 신고하시길 바랍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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