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교통사고' 다음날, 경찰서장이 직원들에게 강조한 '이것'
"우리 경찰서 일이잖아요. 내 일, 네 일 가르지 말고 모두 함께 합시다."
지난 7월 2일 류재혁 남대문경찰서장이 이른 아침 일선 과장들과 머리를 맞댔다. 전날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도로에서는 제네시스 차량이 역주행을 해 사상자 16명이 발생했다. 류 서장의 소신은 분명했다. 여럿이 모이면 1의 노력만 들여도 10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당시 운전자와 동승자가 부부 싸움을 했다는 소문부터 사고 원인, 급발진 여부 등을 두고 의혹이 증폭됐다. 류 서장은 과장들과 태스크포스(TF)를 꾸린 뒤 역할을 나누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도록 했다.
일선 과장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수사 방향성을 잡았다. 사고 조사부터 피의자 심문 기법, 법적 내용 검토, 언론 대응, 유실물 관리, 유족 지원 등 모두 자기 일처럼 대했다. 피드백을 주면 담당 과장은 전폭적으로 수용해 수사에 반영했다.
최종 수사 브리핑까지 한 달이 걸렸다. 보통 수사가 두 달 이상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빠른 조치였다. 경찰은 주변 CCTV(폐쇄회로TV), 블랙박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피의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사고 당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최종 결론냈고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 서장은 경찰청 경비국에서만 17년 넘게 근무한 일명 '경비통'이다. 그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를 비롯해 평택 쌍용차 농성, 용산4구역 남일당 화재 사고 등 주요 집회·시위 관리를 맡았다.
그는 집회·시위에 있어 경찰의 역할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정해진 기준대로 집회가 이뤄지되 그 범위를 벗어났을 때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게 류 서장 결론이다. 주변을 방해하는 과도한 집회 소음, 무단 도로 점거 등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
경비통으로 근무한 경험은 2022년 7월 전북 부안경찰서장으로 일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화물연대가 한 달 동안 파업을 진행해 닭 출하에 차질을 빚을 뻔 했다. 복날을 앞두고 닭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농가는 발만 동동 굴렀다.
당시 경찰서 직원은 총 80여명. 대규모 집회·시위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도 부재한 상황이었다. 류 서장의 원칙은 그 때도 분명했다. 도로를 점거하고 물류 이동을 방해하고 불법 행위를 한다면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것.
명확한 매뉴얼 덕분에 해당 지역은 비교적 물류 흐름이 원활했다. 류 서장은 "나중에 집회를 할 때는 가운데 차도를 텅 비워놓고 인도와 1개 차로에서 신고대로 진행했다"며 "전국적인 위기 상황이었는데 그런 광경은 거의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남대문서는 소공동, 회현동, 중림동, 명동 등 3.24㎞ 면적의 4개 행정동을 맡고 있다. 시청, 서울시의회, 명동성당, 국보 1호 숭례문, 서울역도 모두 남대문서 관할이다. 이곳에 주민등록을 둔 인구는 2만2500여명이지만 유동인구는 10배가 넘는 23만여 명에 이른다.
남대문서는 집회·시위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많으면 수십 건이 있을 때도 있다. 규모가 큰 집회는 서장이 직접 현장에서 지휘한다. 기차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실종자, 가출자도 많아 타 경찰서와 공조도 많이 한다.
남대문서는 노숙인 관련 신고가 가장 많다. 최근에는 수급비를 이용해 도박에 쓴 노숙인에 대해서도 단속에 나섰다. 주변 환경 정화를 위해 서울시와 협력하기도 했다. 지하보도 등 우범 지역에 대해서는 순찰에 나서고 있다.
류 서장은 "노숙인은 피의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며 "노숙 자체가 근원적으로 사라지는 게 목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류 서장의 목표는 남대문서 직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그는 "업무를 가장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맡은 사람"이라며 "제 몫은 각자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도록 뒷받침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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