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규모 세계 3위인데…미루고 미룬 ‘과세’ 10년 뒤처져[세금은 죄가 없다④]
3년 전 “과세 자신 있다”던 기재부
해외 거래소 탈세 등 해결책 요원
‘체계 정비 미흡’ 이유, 유예만 반복
2027년은 대선 정국 맞물려 ‘변수’
영국 등 해외 주요국 대부분 과세 중
“세부 기준 명확히 정해 실기 말아야”
“(과세에) 자신 있습니다.”
2021년 11월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가상자산 과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한 답변이다. 이듬해 1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 양도 혹은 대여 때 발생하는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기본공제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22%의 세금을 물린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홍 부총리의 공언 이후 3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도돌이표’다. 기재부는 지난 7월 발표한 2024년 세법개정안에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던 가상자산 과세를 2027년 1월까지 2년 더 유예하자고 했다. 과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과세 체계 정비가 덜 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확정될 경우 가상자산 과세의 유예기간만 총 5년이 된다. 정부가 준비를 안일하게 해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과세 지지부진, 왜?
당장 과세 기반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이 제도 시행에 ‘걸림돌’이 됐다.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가 국내가 아닌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이를 추적해 과세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2023년부터 가상자산에도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가 적용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해외 거래소가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는데, 기재부는 그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202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자에 대한 정보 교환을 골자로 한 ‘암호화자산 보고 규정’이 시행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공백을 피하고자 과세 유예를 선택한 셈이다.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에 따라 유예가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기재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주식에도 과세하지 않으면서 가상자산에만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는 주식·채권 등 다른 금융상품 과세와 함께 봐야 한다”면서 “기재부에서는 ‘큰형님’ 격인 주식도 금투세 폐지로 과세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인데 가상자산 과세 체계를 먼저 잡는 게 맞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얼어붙은 투심도 과세 유예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가상자산 시황중계업체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국내 가장자산 일일 거래량은 지난 3월 20조원대에서 현재 2조원대로 약 90% 급감했다. 지난 2월 미국에서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면서 투심이 불붙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내는 가상자산 투자에 아직까지 제도적 제약이 상당하고, 시장도 침체기”라며 “시장 활성화 측면이나 투자자 정서를 고려했을 때 과세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년 뒤에는 될까?
이번 유예와 별개로 금융상품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가상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 추가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가상자산 소득은 금융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구분돼 있다. 2020년 과세 추진 당시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기타소득은 포상금·복권당첨금 등 일시적 소득에 해당하는 과세 분류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 ETF를 승인하는 등 가상자산의 금융투자 상품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기조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식이나 코인은 돈을 조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목적이 같다”면서 “코인도 사실상 증권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데, 코인으로 인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가상자산을 기타소득으로 보면 금융소득에 적용되는 결손금 이월공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전년도에 3000만원 손실을 보고 올해 3000만원 수익을 봐 2년간 합산 수익률이 0%더라도 현행안대로라면 올해 수익 3000만원에 대해 과세가 적용된다. 수익과 손실을 번갈아 보는 널뛰기 장세에서 투자자가 과도한 세금을 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월공제가 적용되면 일정 기간 동안 손실금을 이월해 공제받을 수 있다. 금투세도 5년간 이월공제가 적용된다.
공제한도 역시 논의가 필요하다. 금투세는 공제한도가 5000만원이고, 은행 예금이자도 2000만원까지는 금융소득 과세에서 면제된다. 그런데 가상자산 공제한도는 250만원으로 적은 편이다. 가상자산의 금융성을 인정한다면 공제한도 역시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황 교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보면 가상자산은 이미 주식과 상당히 유사한 규제를 받고 있다”면서 “면세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외 주요국 대부분 과세…‘실기’ 말아야
제도 보완이 필요한 건 맞지만 마냥 도입 시점을 미룰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은 2014년부터 가상자산 거래이익을 자본이득세로 과세하고 있다. 일본도 2017년부터 가상자산 거래이익을 ‘잡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 영국은 2018년부터 1만2300파운드(약 2000만원)를 초과하는 가상자산 거래 차익에 소득세를 부과한다. 2027년부터 과세가 된다 해도 해외 주요국에 비해 10년 정도 과세가 뒤처지는 셈이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규모는 현재 6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가상자산 시장 규모도 미국·일본에 이은 세계 3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갈 만한 기초체력은 다져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가 과세 유예를 반복하면서 자칫 과세 논의 자체가 공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홍 교수는 “과세는 원칙이 중요한데 지금은 일관성이 허물어진 상태”라며 “정부가 유예를 반복하면서 ‘2년 뒤에도 또 유예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황 교수는 “언제까지 유예만 할 수는 없는데, 2027년에는 대선 정국이라 쉽게 과세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금이라도 세부 기준을 명확히 해나가야 정책 효율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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