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제’ 늘면 ‘순살아파트’ 없어질까[올앳부동산]
#2023년 4월29일 오후 11시25분,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건설현장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 1~2층 슬래브 약 2189㎡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국토교통부는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통한 현장 특별점검에서 전단보강근(철근) 누락, 기준치보다 낮은 콘크리트 강도, 설계 범위를 넘어서는 초과하중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사고 여파로 철근을 누락한 일명 ‘순살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가 벌어졌다.
#지난 5월 충남 당진시는 송악읍 기지시리에 있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당진 푸르지오 클라테르’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감리 과정에서 대우건설이 곰팡이가 핀 목재를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리단은 비에 젖어 곰팡이가 핀 목재를 발견한 후 대우건설에 9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당진시에 신고하면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목재는 아파트 내부 몰딩(테두리에 쓰는 장식)이나 천장 에어컨 설치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전체 667가구 중 39가구에서 발견됐다. 대우건설은 전 가구 천장을 전면 재시공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입주민들의 입주는 당초 계획보다 늦춰졌다.
2022년 1월 6명의 건설노동자가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에도 건설현장 곳곳에서는 부실시공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공정 전 과정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감리 및 시공사에 있다. 사고나 부실시공 등으로 완공예정일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면 건설사가 모든 법적·경제적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건설사가 잘못해도 입주자들이 책임을 나눠가져야 하는 이상한 구조가 형성돼 있다.
여기서 입주자란 사전청약을 통해 당첨된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다. 입주예정자들은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의 조감도만 보고 수천만~수억원의 계약금, 중도금을 치른다. 이는 우리나라 주택건설 시장이 ‘선분양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란 주택이 완공되기 전에 입주자에게 먼저 분양하고, 완공 전까지 입주자가 전체 분양가의 최대 80%를 계약금, 중도금으로 납부해 건설비용에 충당하는 제도다. 반면 후분양제는 주택이 60~80% 이상 완공된 상태에서 구매자가 주택 실물을 확인한 후 구입하는 제도다.
주택법 및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상 우리나라의 주택공급은 후분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적어도 주택건설 공정률이 60%에 도달한 이후에 분양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선분양은 예외적으로 불가피할 때 할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후분양제는 정부가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를 정책적으로 대량 공급한 1978년 5월부터 사실상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주택건설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시도했지만이 역시 집값 상승 억제라는 당면과제 때문에 좌절됐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후분양 비율은 16.2% 수준에 그쳤다.
후분양제는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점이 없는 제도다. 공정이 60~80% 가량 진행된 후 분양을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돈을 납부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소비자가 후분양을 꺼릴 이유가 되긴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아파트 공정과정에서 건설사가 철근을 빼먹고,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곰팡이 핀 자재를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는 그 아파트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선분양제에서는 건물이 무너져도 소비자(입주예정자)는 이미 당첨과 함께 많은 돈을 납부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완공을 기다려야 한다.
오정석 서울주택도시공사(SH)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 안철수(국민의힘)·복기왕(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주택건설 품질향상을 위한 분양제도 정책 토론회’에서 “선분양과 후분양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과정에서 리스크(위험)를 누가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분양제 정착하려면 제도개선 선행돼야
부실 시공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를 떠나, 건설업계에서 후분양이 정착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의 돈을 빌려’ 공사하는 방식이 이미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로 가려면 결국 건설사가 남의 돈(분양자금)을 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금을 일으켜 집을 지어야 하는데, 많게는 수천억원의 자금을 대출 등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국내 건설사는 많지 않다. 후분양제를 정착시키려다 자칫 중소형 건설사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송두한 GH도시주택연구원장은 “후분양제로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후분양이 정착되면 결국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건설산업이 재편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라며 “시중은행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기준을 높은 수준으로 올릴 수밖에 없고, 중소건설사는 살아남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후분양이 민간건설시장에 정착하려면 주택금융서비스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물론 선분양을 하면 부실시공이 늘고, 후분양을 하면 부실시공이 줄어든다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차피 후분양을 해도 소비자가 아파트 전체를 다 볼 수도 없고, 본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하자를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허지행 HUG주택도시금융연구원장은 “부실시공은 분양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공에 대한 감리, 공사품질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이고, 이는 시스템의 고도화로 풀어야 한다”며 “후분양이 공정률 60~80%에서 분양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소비자가 주택의 실체를 보고 분양받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종엽 LHRI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입주 전 전문가그룹을 구성해 품질점검을 시행하지만 전문가들이라도 이미 지어진 건물에 어떤 누락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후분양을 하더라도 (비전문가인) 입주자들이 육안으로 하자를 잡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SH는 9월 중 ‘100% 시공 후 분양’을 선언하고, SH에서 추진하는 모든 공공주택건설을 ‘완공 후 분양’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SH는 현재 공정률 90%에서 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2018~2022년 공공분양 물량 중 16.9%가 후분양으로 진행됐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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