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정책이 실종된 선거판
재선시 에너지가격 '반값' 호언등
트럼프, 방법론 없이 속빈 공약만
유권자의 통치 기대마저 떨어뜨려
통치가 어려운 부분은 유권자들이 분노하는 게 무언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불만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선거에 나선 후보자의 ‘정책’ 의제가 다뤄야 할 과제다. 안타깝게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책 담론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켰기 때문에 실제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 노력하는 정치인은 이제 거의 없다.
공화당의 기수인 트럼프는 재집권할 경우 환상적인 정책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의 공약은 한마디로 실천 가능한 방법론이 결여된 빈말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그의 약속은 물가 안정이다. 특히 에너지 가격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어떻게?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하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다수의 언론과 우군들이 그의 속 빈 공약을 알아서 증폭시킨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봤듯 트럼프는 가끔 그의 공약에 관료주의적인 전시 행정의 옷을 입힌다. 대통령 집무실에 복귀한 첫날 행정부의 모든 장관과 기관장에게 사용 가능한 수단과 권한을 총동원해 인플레이션을 잡고 소비자물가를 신속히 낮추라고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다. 또 취임 후 첫 100일 이내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내각에 지시할 것이다.
그러나 첫 100일이라는 시간대 위에 올려놓은 실없는 공약은 황당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물론 상당수의 언론 매체들조차 이런 난센스를 대단히 신중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정책 의제인 양 요란스럽게 다룬다.
사실 트럼프의 우군들은 그가 속 빈 공약이라도 쏟아내기를 원한다. 최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트럼프에게 전달했다며 수주에 걸쳐 그에게 일러줬던 정책안을 하나하나 되뇌었다. 그레이엄 의원이 밝힌 구체적인 정책 조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당시 전국 평균 가스비는 갤런당 1.87달러에 불과했고 국경은 40여 년래 가장 안전했다. 인플레이션은 상승하기는커녕 하락했고 세계는 지금처럼 불타오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스콧 워커 전 위스콘신 주지사, 크리스 서누누 뉴햄프셔 주지사와 트럼프의 보좌관이었던 캘리앤 콘웨이를 비롯한 다른 공화당 관리들도 트럼프에게 인플레이션·이민·범죄 등 쟁점안을 집중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해법이 아니라 문제일 뿐이다. 유권자들이 이들을 미국이 직면한 중요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고 민주당보다 공화당이 이 같은 문제를 보다 잘 처리할 것으로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전임 대통령이 이런 쟁점 이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불평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유권자들에게 우산을 나눠주거나 비를 피할 장소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정책이다. 트럼프는 물론 그의 우군들도 비와 우산이라는 방정식에서 우산 항목을 다루지 않고 있다.
공화당으로서는 그들의 계획과 입장을 자주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유권자들이 그들의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류 미비 이민자 집단 추방, 달러화 가치 절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치화, 10% 이상의 글로벌 보편 관세 부과 등 트럼프가 제시한 거의 모든 주요 경제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는 확실한 공식이다.
대통령 재임 당시 트럼프는 개선된 의료 관리 계획을 약속했지만 훌륭하고 더욱 저렴한 마법 같은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채 실패로 끝나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6%의 경제성장과 연방 적자 해소 공약을 내놓은 후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이나 변변한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그러니 이를 지켜본 민주당이 장단점과 취약점까지 고려한 신중하고 상세한 정책안을 작성하려 애쓸까? 그저 높은 물가를 불법화하겠다고 약속하면 그만인데 굳이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대통령직에 도전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공식 선거 사이트에 ‘정책’ 섹션을 설치하지 않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정책 제안은 생략하고, 공약은 최대한 부풀리며, 상세한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듣기 좋은 결과만을 약속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인격과 도덕성의 기준을 한껏 낮춰놓은 것처럼 트럼프는 통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마저 크게 저하시켰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박2일’ 합류 2회만에 녹화 불참…멤버들은 “이럴거면 하차하라” 무슨 일?
- 미녀들과 한잔 후 깨어 보니 손발 묶이고 피범벅…1억 넘게 털렸다
- '알몸 김치' 벌써 잊었나?…중국산 김치 수입 급증 무슨 일?
- 투애니원 콘서트 인기 폭발…韓 이어 이 나라서도 매진 행렬
- '독도는 우리땅' 부른 엔믹스, 日 누리꾼에 '악플 테러'
- '사격선수 김예지, 루이비통 화보 나왔네'…'머스크는 왜 날 언급했을까'
- 매일 밤 30분씩 ‘이것’ 했다는 日남성…12년만에 수명 2배 늘렸다는데
- 평생 죄책감 안고 사셨던 할머니께…주정훈의 가슴 뭉클한 '약속'[패럴림픽]
- ‘벌레’ 도발에 음란 메시지로 받아친 20대…2심서 “무죄” 왜?
- 목욕하는 남성들 알몸 밖에서 보였다…리조트의 황당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