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벗어난 기분? 오타니만이 만끽할 수 있는 첫 가을야구의 설렘, 50-50은 덤[스조산책 MLB]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 진출 7년 만에 가을야구를 겨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타니가 지난달 29일(한국시각) 자신의 바블헤드 데이를 맞아 반려견 데코이를 안고 얼굴을 맡긴 채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USATODAY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다저스타디움에서 차를 타고 산타 아나 프리웨이, 즉 5번 고속도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40분을 달리면 에인절스타디움에 닿는다.

LA 다저스와 LA 에인절스가 벌이는 인터리그 게임을 프리웨이(freeway) 시리즈라고 부르는 이유다. 뉴욕 양키스-뉴욕 메츠전, 시카고 컵스-시카고 화이트삭스전과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지역 라이벌전으로 분류되지만, 다저스와 에인절스를 라이벌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역사와 전통이 그렇고 최근 성적 및 흥행 실적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다른 건 차치하고 성적만 놓고 비교해 보자. 에인절스는 올해도 포스트시즌이 물 건너갔다. 2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57승80패로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 꼴찌에 처져 있다. 지구 선두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18게임차 뒤져 있고, 와일드카드 3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는 17.5게임차로 벌어져 있다.

에인절스가 가장 최근 가을야구를 한 것은 2014년이다. 당시 디비전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에 3패로 무릎을 꿇어 조기 탈락했다. 이후 2015년부터 올해까지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30팀 가운데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지 가장 오래된 팀이 에인절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다. 디트로이트도 2014년이 마지막 가을야구 시즌이었다.

오타니가 지난달 24일(한국시각)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오른손을 치켜들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UPI연합뉴스

에인절스가 이처럼 실망스러운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투자의 규모가 아니라 투자의 효율성 문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2015년 이후 작년까지 페이롤 순위를 보면 8위, 7위, 10위, 7위, 9위, 13위, 7위, 10위, 8위로 한 번도 15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매출과 투자 규모가 메이저리그 중상위권이다. 올해 긴축재정을 선언하면서 14위로 떨어졌는데, 그래도 1억7000만달러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투수를 뽑아야 할 때 타자에 집중하고, 타자가 필요하면 투수를 뽑는 패턴이 반복된다. FA와 트레이드 시장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계약은 타이밍과 설득, 그리고 미래를 보는 안목인데, 이 부분에서 에인절스는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에인절스의 지금 승률(0.416)은 1994년(0.409)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투타가 완전히 무너졌다. 선발투수 패트릭 산도발, 불펜투수 호세 소리아노, 주포 마이크 트라웃, 내야수 루이스 렌히포가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앤서니 렌던은 2020년 팀 합류 후 한 번도 정규 일정의 절반을 채운 적이 없다. 트라웃도 세 번째 MVP를 수상한 2019년 이후로 매년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도 무릎 부상으로 4월 말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트라웃은 12년 4억2650만달러 계약 중 아직 6년이 남았다.

반면, 다저스는 올해도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우승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날 현재 82승55패로 양 리그를 합쳐 최고 승률을 질주 중이다. 선발진이 연쇄 부상으로 신음하는데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뎁스 덕분이라고 해도 좋다. 2013년 이후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기정사실이다. 12시즌 가운데 2021년을 뺀 11시즌이 지구 우승이다. 올해 예상 승수는 97승인데, 시즌 막판 스퍼트를 낸다면 단축시즌인 2020년을 제외하고 2019년부터 5시즌 연속 세 자릿수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2020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빼면 가을야구를 썩 만족스럽게 끝낸 적이 없기는 하나, 다저스는 언제나 월드시리즈 우승 후보 꼽힌다. 성적이 좋으니 관중 동원은 2013년부터 늘 1위다.

오타니는 사상 첫 50홈런-50도루에 도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런 대조적인 두 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선수가 바로 오타니 쇼헤이다. 오타니는 2018년부터 작년까지 에인절스에서 한 번도 포스트시즌 게임을 치른 적이 없다. 정규시즌 승률은 매년 4할대에 머물렀다. 2021년과 2023년, 사상 최초로 두 차례에 걸쳐 만장일치 MVP에 오른 오타니는 더 이상 에이절스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오타니는 지난 겨울 FA 시장에서 팀을 고르는 기준으로 우승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고 한다. 사실 작년 시즌 중 예비 FA 오타니의 행선지를 놓고 모든 사람들이 다저스를 지목했고, 다저스는 그 1년 전인 2022년 겨울 FA 시장에서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오타니를 영접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작년 12월 10년 7억달러의 역대 최고액 계약을 선사했다.

'지옥'에서 벗어난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7년 만에 가을야구를 꿈꾸고 있다. 물론 궁극의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일 것이다. 그러나 디비전시리즈, 리그챔피언십시리즈는 뛰는 것만도 그에게는 가슴 벅찬 무대다. 여기에 역사상 최초로 50홈런-50도루를 달성한다면 더욱 화려한 10월의 야구를 만끽할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