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지 않는다”…트럼프가 ‘깨운’ 민주당, 미국 정치

한겨레 2024. 9.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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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미국 대선 돋보기
⑩트럼프가 단결시킨 민주당
지난달 19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월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카멀라 해리스-팀 월즈 대통령-부통령 후보를 공식 지명하고 본격적인 대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동시에 이번 시카고 전당대회가 미국 민주당에게 중요한 전환의 변곡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느낀 4가지 의미를 짚어봤다.

세대교체의 실현

이번 전당대회는 1968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피의 전당대회’와 계속 비교되었다. 56년 전의 전당대회는 백인과 남성으로만 구성된 ‘전능한 당 보스들’이 당에 대한 장악력을 잃기 시작한 세대교체의 전환점이었다. 젊은 개혁가들이 민주당 정치의 문을 무너뜨려 대통령을 선출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만들었다. 그 이후부터 예비선거와 전당대회가 선출직 후보를 선발하는 과정을 지배하게 되었다. 활동가와 일반 유권자가 시골과 도시의 민주당위원회를 대체하게 되었다. 대의원을 다양화 했고 여성과 소수 인종이 의석을 차지하도록 새 규칙을 고안했다. 새 세대의 이상주의적인 민주당원들이 의원으로, 보좌관으로 워싱턴에 몰려들었다. 한때 흑인민권 운동가, 반전·평화 운동가, 페미니스트 운동가 등 사회 운동의 영향력이 대규모 돈을 내는 후원자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그 ‘개혁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유한 기득권 세력으로 변했다. 1970년대에 그들이 이끌었던 활기찬 사회·노동 운동은 이제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울타리로 변질되었다. 그때의 주역이었던 조 바이든,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낸시 펠로시, 찰스 슈머, 짐 클라이번, 버니 샌더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모두 80대이고 여전히 민주당의 실세다.

이번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의 슬로건은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는다(We are not going back)”이다. 트럼프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세대 교체의 다짐이다.

2016년 오바마의 두번째 임기가 끝났을 때 55살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 다음 대통령 후보였으니 10년 뒤로 간 것이고,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은 거기에서 또 10년을 뒤로 간 것이다. 지난 6월27일 후보 토론회가 없었다면, 여전히 민주당은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이는 80을 훌쩍 넘은 고령의 후보자의 진실을 슬쩍슬쩍 숨기면서 선거운동 중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스 등이 전면에 나선 젊은 당으로 세대교체를 실현했다. 전당대회 첫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등장하자, 청중은 “쌩큐 조” “아이러브 조”라고 외치며 환호했지만, 그것은 바이든을 달래면서 미국 민주당이 세대 교체의 길로 성큼 나아가려는 장면이었다.

앤디 김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21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오른 한국계 앤디 김

2004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바락 오바마는 그해 보스톤에서 개최된 전당대회의 첫날 메인스테이지 프라임타임 연설자로 중앙 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여기서 스타로 떠오른 오바마는 그해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불과 4년 뒤인 2008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메사츄세츠주 연방상원에 출마한 엘리자베스 워런이 메인 스테이지에서 연설을 하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그해 상원에 입성했고, 4년 뒤 2016년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나는 계속 앤디 김(Andy Kim)을 생각했다. 앤디 김은 뉴저지주 민주당 내 비주류 출신 돌출 스타다. 주지사 부인과 경쟁을 하면서 당의 내부 부패를 고발하고 폭로해, 시민사회의 스타가 되었고, 연방 상원 입성의 문턱에 서 있다. 그런 그를 뉴저지주 민주당이 그를 연설자로 내보낼 리가 없다는 생각에 정말로 착잡했다.

앤디 김은 전당대회 시작 며칠 전에 필자에게 ‘연사로 초청받지는 못했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전당대회 기간에 그의 비서실장으로부터 ‘앤디 김이 수요일 프라임타임의 연설자로 나선다’는 귀띔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앤디 김이 상원에 도전하는 모험에 나설 때부터, 나는 그가 2024 전당대회에서 연설자가 되면 머지 않아 미국 대통령 후보군에 한국계 미국인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앤디는 길지 않은 연설을 했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40대의 떠오르는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 이번 전당대회의 가장 큰 의미이자 보람은 앤디 김이다. 2018년 그가 하원의원 선거에 첫 도전했을 때부터 그의 선거운동을 지지해 왔다. 전당대회 참관인 좌석에서 그의 연설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있을까.

해리스의 팔레스타인 시위대 포용하기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바이든 정부의 일방적 친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에 대한 군수물자 지원 반대와 ‘즉시 휴전’을 요구하는 미국 내 범 진보계의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시위대는 대선판에 직접 뛰어 들었다. 경합주의 예비 경선에서 바이든에 반대하는 표가 놀랄 정도로 급증했다. 팔레스타인계의 시위를 중심으로 젊은 진보 세력의 표가 결집했다. 각 주에서 대선 경선이 치러지는 동안 이 시위대는 점점 더 커졌고 조직화되었다. 이들은 ‘가자! 시카고 전당대회로’를 외쳤다.

지난 7월21일,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사퇴를 선언한 뒤에도 친팔레스타인계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모든 언론은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여개의 크고 작은 진보단체들이 시카고에 집결했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유나이티드 센터 주변을 시카고 경찰들이 겹겹이 애워쌌다.

팔레스타인계는 경합주에서도 가장 중요한 미시간에 집결해 있다. 지난 4월 미시간 경선에서 바이든으로부터 10만표 이상이 이탈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이후에 해리스 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팔레스타인계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번 전당대회 기간에도 시위대의 핵심 인물들을 해리스 부통령이 전용차와 전용기에 태워 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해리스는 시위에 적극 가담하는 친팔레스타인계 50여명의 대의원과 별도로 만나 그들의 요구를 경청했다.

해리스의 후보 수락연설 중에 몇 명의 고함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기간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텍사스의 공화당 주지사가 위협한 것처럼 국경의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시카고에 도착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예언한 해리스를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대거 이탈도 없었다. 완벽한 해법이 없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해리스의 외줄타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쨌든 이것도 그의 노력이고 능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우파 정치단체 ‘자유를 위한 어머니들’(Moms for Liberty) 행사에서 이 다단 체 공동 창립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가 민주당을 굳게 단결시켰다

바이든이 재선 캠페인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보다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한 민주당원은 없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트럼프라는 이름을 물리치기 위해 의회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며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밤에 잠을 거의 못잔다. 그가 다시 집권한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라고 했다.

이 점에서는 바이든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무 것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없다. 여기에는 개인적 야망도 포함된다”고 말하고 후보직을 사퇴했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최초의 민주당 고위 의원 중 한명인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내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요구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에 주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트럼프에 관한 것이고 그를 막아야 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는 민주당을 극도로 실용적인 정당으로 만들었다. 2020년에 조 바이든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게 한 것도 바로 그 실용주의였고 또 2024년 바이든을 포기하도록 한 것도 바로 그 실용주의였다.

정치학자들은 오늘날 공화당을 ‘개인 정당’이라고 부른다. 당이 어떤 의제나 연합이 아닌 트럼프 개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공화당은 트럼프의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리즈 체니, 크리스 크리스티, 미트 롬니 같은 정통 공화당원들을 모두 추방되었다. 트럼프의 지금 공화당은 정부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모든 논의는 트럼프 재선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민주당의 단결은 트럼프가 만들었다. 이번 선거는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결이 아니고 트럼프와 민주당의 싸움이다.

김동석 |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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