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위험을 보는 네 가지 방법

최은영 2024. 9.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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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재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장
[고광재 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장]의정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6개월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부족한 의료인력 확충과 지역 및 필수 의료분야의 불균형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환경을 개선하면서 의사 수를 점진적으로 늘리자며 의대 정원 확대의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고통은 환자의 몫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 전문의들의 현장 이탈이 느는 것을 보면서 다시 급증하는 코로나와 추석 연휴 병원 이용자가 늘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병을 고치는 의사에는 신의, 명의, 평의, 의원 4단계가 있다고 한다. 최고의 의사는 환자의 얼굴만 보고도 질병을 안다는 신의(神醫)다. 다음은 환자의 목소리만 듣고도 증상을 알 수 있다는 명의(名醫)다. 환자의 증세를 물어보고 아는 평의(平醫)가 그다음이고, 환자의 맥을 짚어보고 증세를 아는 의사를 의원(醫員)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사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항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의료분야를 포함해 안전이나 구조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특별하게 예우하는 이유다.

필자는 안전에도 위험을 보는 시(See), 룩(Look), 워치(Watch), 인사이트(Insight) 4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단계는 위험이 눈에 보이는 시 단계다. 깨진 유리창처럼 위험한 상태가 눈에 보이니 조심하게 되고 안전을 위한 개선 조치도 즉시 이뤄진다. 위험도가 높은 장소나 업무에서 예상과 달리 사고가 많이 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단계는 위험장소나 시설에 위험표지판을 부착하거나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단계는 위험이 있음에도 쉽게 찾지 못해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 룩 단계다. 항상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업무에 익숙해져 위험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종 놓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예방 투자 또한 잘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소기업에서 사고 발생률이 높은 이유다. 이럴 때는 사고 발생 주기와 유형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분석해 취약 분야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3단계는 위험이 보이지 않아 꼼꼼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워치 단계다.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안심하고 있다가 숨어 있는 위험 요인이나 돌발상황을 만나 사고를 당하게 된다. 대형사고 대부분이 이 단계에서 발생한다. 인센티브 같은 동기부여 방안을 마련하면 보이지 않는 위험을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안전을 기본으로 인식하고 위험을 통찰하는 인사이트 단계다. 경영자가 모든 일에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등 위험을 상시 관리해 나가는 단계다. 인사이트는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내용인 안전보건관리체계구축과 안전경영 리더십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묻고, 진찰을 통해 아픈 곳을 찾아내듯이 산업재해도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보고, 찾을 수 있다면 해결은 쉬워진다. 영화 ‘관상’의 한명회와 관상가 김내경이 나누는 대화에서 문제의 원인 찾기와 해결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거사를 일으킨 사람들의 면면을 봤을 텐데 그 관상은 기록해 두었소. 기록하시오. 난을 즐기는 자들의 특징을 상세히 기록해 두면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할 수 있지 않겠소.”(한명회)

“나는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격이지. 바람을 봐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요.”(김내경)

어려움 없는 인생 없고 갈등 없는 사회 또한 없다. 영국의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자신의 저서 ‘역설을 넘어서 미래를 이해하기’에서 “상반된 것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 하기보다 그것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높은 수준의 산재사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현재의 문제를 인정하고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위기도 예측해 잘 준비하면 기회가 된다. 사고의 결과가 아닌 원인을 보자. 파도가 아닌 바람을 보자.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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