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년 전 클레오파트라의 화장품, 현대 뷰티 산업의 초석 되다 [세계사로 읽는 경제]

2024. 9. 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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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만년 전부터 이어진 화장품의 역사 
네안데르탈인, 열매와 광물에 동물 기름 섞어 사용 
클레오파트라, 종교 의미 탈피 오직 아름다움 표현
선크림, 스킨 케어는 물론 향수까지…무독성 원료
동서양 미의 기준, 신기하게도 흰 피부와 붉은 입술
19세기 들어 화장품은 산업화하고 사용은 일반화
워런 버핏, 올타뷰티 투자에 경제침체 전조 예상도
K뷰티, 한류 타고 반기 수출 48억 달러 역대 최고
편집자주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2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화장품 판매점에서 소비자가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네브래스카 주의 가장 큰 도시)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기도 한 그가 지난달 화장품 업체 울타뷰티에 투자한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1990년 설립된 울타뷰티는 화장품, 향수, 중저가 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미국판 ‘올리브영'이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버핏이 립스틱 효과를 노렸을 거라 어림짐작했다. 버핏이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화장품 회사 주식에 투자했을지는 자신만 알 일이다. 올해 우리 시장에서도 실리콘 투, 클리오, 코스맥스 같은 화장품의 주가가 들썩였다. 경제학에 립스틱 효과란 게 있다. 경기침체기에 소비자가 자동차와 같은 값비싼 여가 활동 제품에서 립스틱과 같은 작은 사치품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말한다. 요즘은 젊은 남자도 화장을 하는 시대인데 고대 시대도 그랬다. 인류의 화장(化粧) 역사를 돌아보며 미(美)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 본다.

약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화장을 시작했다. 그들이 거주한 스페인의 무르시아 섬에서 이색적인 게 발견됐다. 노란색 색소(파운데이션)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광석가루가 섞인 붉은 파우더가 담긴 조개껍데기가 그것이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를 보자. 이는 식용과 달리 물감을 섞고 저장하는 화장 용기로 추정했다. 이처럼 최초 화장품은 열매와 식물 염료재나 광물을 빻은 가루를 동물 기름과 섞어 사용했다.

1967년 개봉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가 분한 클레오파트라는 기존 종교적 의미로 사용했던 화장품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용도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한 화장품 개발기술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화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기원전 7500년 고대 이집트에서다. 화장이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을까? 그렇지 않다. 초기 이집트 시대에서 화장은 종교적 의식과 신체 보호라는 목적을 위해 시작했다. 험난한 자연에서 자신의 신체를 온전하게 유지하려고 피마자기름을 몸에 바르고 얼굴과 몸에 문신을 새기는 한편, 눈에 짙은 화장을 했다. 이후 화장은 점차 외모를 치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 시대에 들어와 정점을 찍었다. 클레오파트라의 피부 관리와 화장 기법 일부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 화장법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눈에 있었다. 여자와 남자 모두 '콜'이라고 부르는 먹으로 눈 주위를 진하게 칠했다. 광물에서 얻은 녹색과 청색 안료로 눈 주위에 아이섀도를 직접 그렸다. 소금, 납은 산화질소를 만들어내 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해박한 지식으로 이집트 화장품을 체계화하고 세분화한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클레오파트라가 애용한 화장품 원료 중 많은 성분이 무공해 무독성분이란 것은 놀랄 만하다. 선크림의 효능은 과거에도 중요했다.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오일을 사용했다. 염색기술과 비듬약으로 가발을 제작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한 화장품은 스킨케어와 액세서리, 보디·네일·헤어 케어, 향수를 비롯해 여러 가지다. 그가 아낀 많은 아이템은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비교해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런던 부근 한 고대 로마 사원 유적지에서 발견된 서기 150년경에 만든 크림 통에는 크림을 떠내던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녹말과 동물지방이 들어 있는데, 녹말은 지방의 번들거리는 느낌을 줄이기 위해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화장은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로 변천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피부를 하얗게 하는 화장을 즐겼다.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은 땡볕에서 일해 피부가 검었다. 하얀 얼굴을 과시하기 위해 '백연광'이라는 납성분을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그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납중독에 걸려 일찍 죽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천연물질로 된 화장품 재료는 매우 고가여서 극소수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피부에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려고 올리브 오일과 벌꿀을 얼굴에 발랐다. 목탄으로 눈썹을 짙게 하고 립스틱으로 입술을 붉게 칠했다.

흰 피부에 대한 열망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했다. 흰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신라 시대에는 백분(쌀가루 분)과 연분(납 가루 분)을 만드는 제조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다. 일본 고대 문헌에 따르면 신라의 승려가 692년 일본에서 연분을 만들어 상을 받았다고 한다. 동서양 모두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과 가지런하고 또렷한 눈매가 미의 기준이었다는 것은 신기하다.

중세시대를 가상한 왕과 왕비. 당시 여성들은 창백한 하얀 피부를 선호했고, 이를 위해 분필 가루나 밀가루를 바르거나 심지어 피를 뽑아 창백해 보이려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종교가 우월했던 서양 중세시대에 화장은 환영받지 못했다. 교회 장로는 화장을 못마땅해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화장품을 사용했다. 당시 연약함과 가냘픔이 여성성의 상징이었다. 여성들은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를 선호했다. 분필 가루, 밀가루를 바르고 심지어 피를 뽑는 행위도 시도했다. 밝은 금발을 만들려고 물푸레 나뭇잎, 식초, 덩기줄기의 재 등을 사용해 염색을 했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알코올 증류법이 개발돼 화장수와 유사한 화장품을 사용했다. 청결과 위생 개념이 발달해 향수가 생활화된 것은 이 시대의 특징이다. 이는 전염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었다.

19세기 초부터 화장품은 산업화 과정에 접어들었다. 화장품 브랜드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산업을 주도했다. 1828년 겔랑 브랜드 창시자인 피에르 플랑소와 파스갈 겔랑이 ‘하우스오브겔랑’이라는 소규모 점포를 내면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게 산업으로의 근대 화장품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180여 년에 이르는 역사다. 겔랑이 향수에 조예가 깊어 프랑스 파리에 첫 점포를 오픈했다. 나폴레옹 3세 부인인 유제니 황후에게 바치는 오드코롱 임페리얼 향수를 개발했다. 1828년 최초의 립스틱(로즈립)과 1830년 첫 페이스 파우더 등 메이크업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모두 받게 된다. 폰즈는 스킨케어를 산업측면에서 발달시켰다.

근대 화장품 역사의 시작.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Pierre-François-Pascal Guerlain)이 1828년 파리의 리볼리가(Rue de Rivoli)에 첫 번째로 오픈한 화장품 가게 삽화. 인터넷 발췌

19세기 말 이후부터 화장품 사용이 일반화됐다. 1913년에는 미국 약사 윌리엄스가 바셀린에 석탄 가루를 섞어 만든 물질을 눈썹에 발랐다, 그렇게 하자 눈썹이 풍성하고 길어 보였다. 이게 마스카라의 원조이다. 화장품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화장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화장품의 질적인 수준과 기능적인 면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기술 발전과 원료 개발이 이뤄졌다. 현재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100년 이상 된 브랜드를 보자. 겔랑과 폰즈, 키엘, 바세린, 시세이도, 존슨즈 베이비, 가네보, 로레알, 엘리자베스 아덴, 니베아 등. 우리에게 모두 친숙한 브랜드다.

현대에는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을 접목해 인체를 청결히 하고 아름답게 꾸며 주는 단계에서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를 개선하는 중요한 필수품으로 화장품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장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거주하는 우다베 족의 남성들은 화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소년들의 성인식이라고 불리는 신쀼를 앞두고 어린 남자아이들이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

로레알의 상속녀이자 사업가인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마이어스는 2024년 1,00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다. AFP,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 우리 화장품 수출액이 48억 달러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류를 등에 업고 K뷰티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최대 화장품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도 급증했다. 국가별 수출액 증감을 보면 중국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14.1% 줄었지만, 미국은 61.1%, 일본은 21.5% 각각 늘었다. 주요 국가별 수입액은 미국 1억6,000만 달러, 일본 8,000만 달러, 중국 5,000만 달러 등이다. 최대 소비처인 중국 수출 전망이 흐려지면서 주가가 변변치 못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세계 100대 뷰티 기업이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다. 미국이 가장 많은 ‘뷰티대국’이고 다음은 일본, 프랑스 순이다. 세계 최대 뷰티 기업 로레알(세계 시가총액 순순위 30대 그룹)의 상속인 베탕쿠르 메이예가 세계 최초로 재산 1,000억 달러를 가진 여성 부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뷰티 산업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K뷰티의 인기가 미용 의료기기로 옮아가 인수합병 대상이 되고 있다. 흐뭇한 이야기가 K뷰티에서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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