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화가, 김홍도에 꽂혀… 십장생과 신선을 비틀다

용인=김민 기자 2024. 9.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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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불로장생을 이룬 도교 신선들의 모습을 그린 '군선도'.

신성한 인물을 그린 작품인 데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엄숙함을 느낀다.

그런데 스위스 출신 화가 니콜라스 파티는 이 작품 옆에 분홍빛 살을 드러낸 나체를 그린 '뒷모습' 연작을 놓았다.

아쉽지 않느냐는 말에 파티는 "많은 사람이 그 질문을 하는데 철거도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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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호암미술관서 70여점 전시
독특한 시선으로 亞미술계서 주목
전시 끝나면 철거할 벽-문도 꾸며
“시간 지나면 모두 먼지로 사라져”
6주 동안 한국에 머물며 벽화를 그린 니콜라스 파티는 평일은 경기 용인에서, 주말은 서울에서 보냈다. 지난달 26일 호암미술관에서 만난 파티는 “용인에서는 매일 10km씩 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상이었고, 서울에선 서촌 재즈바 주인과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용인=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불로장생을 이룬 도교 신선들의 모습을 그린 ‘군선도’. 신성한 인물을 그린 작품인 데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엄숙함을 느낀다. 그런데 스위스 출신 화가 니콜라스 파티는 이 작품 옆에 분홍빛 살을 드러낸 나체를 그린 ‘뒷모습’ 연작을 놓았다.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만난 파티는 “‘군선도’에서 제가 느낀 건 ‘여유’와 ‘유머’였다”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전시되던 ‘군선도’를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티는 고미술 작품을 전시해 왔던 호암미술관에서 현대 미술가 최초 개인전 ‘더스트’를 연다. 8월 31일 개막한 전시는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벽화 5점을 포함해 70여 점을 선보인다.

●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 미술

김홍도의 군선도에서 차용한 ‘두 마리 개가 있는 초상’.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파티는 처음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미술관 소장품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단순히 고미술 옆에 신작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소재 역시 한국 고미술에서 일부 차용해왔다. 예를 들어 ‘군선도’와 ‘십장생도 10곡병’에서 그가 고른 건 청자, 개, 사슴, 복숭아, 학, 당나귀, 연꽃, 박쥐다. 파티는 두 마리 개를 인물의 머리카락처럼 우스꽝스럽게 좌우로 붙이거나, 사슴을 기둥처럼 쌓는다. 그는 “18세기를 몰라도 누구나 모차르트를 즐길 수 있듯 순수한 눈에 즐거움을 주는 요소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리움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주자’는 여자의 몸처럼 표현했다. 신선이 들고 있던 호리병을 그리려다가 형태가 마음에 들어 청자를 골랐다.

“청자의 곡선이 제 눈에는 몸처럼 보였어요. 손잡이에 작은 개구리가 있어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죠. 그림 속 여자의 머리 곡선과 청자가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리듬이 작품에서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김홍도의 군선도에서 받은 느낌을 설명하며 재미(fun), 엉뚱함(goofiness), 기묘한(uncanny) 같은 형용사를 자주 썼다. 기괴하고 독특한 색채의 초상, 풍경을 통해 주목받은 파티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특히 사랑받아왔다. 그의 엉뚱한 면모는 부엉이를 앞에 둔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보라색 초상이나 ‘주름’, ‘곤충’ 연작 등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 ‘먼지로 된 환영’ 벽화는 사라진다

전시 공간 연출도 눈길을 끈다. 기둥은 모두 가벽으로 감추었고, 아치 형태의 문을 세웠다. 아치문 사이로 반대편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작가가 그린 파스텔 벽화를 배경으로 조선시대 백자나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을 전시했다. 파티는 10대 때 그라피티를 했는데, 그 덕분에 작품을 둘러싼 공간을 구성하는 데도 신경을 쓴다. 호암미술관에는 폭포, 동굴, 숲, 산과 구름 벽화를 그렸다. 이들은 전시가 끝나면 철거돼 소각된다. 아쉽지 않느냐는 말에 파티는 “많은 사람이 그 질문을 하는데 철거도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도 원래는 사찰 입구에 커다랗게 놓여 있었지만 지금 남은 건 미니어처뿐이잖아요. 게다가 금박이 입혀졌는데 지금 남은 금동 용두보당에는 그것이 다 사라졌으니 만든 사람이 보면 ‘이렇게 설치하면 안 돼’라고 할 거예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죠.”

파스텔로 그린 그림들이 “쉽게 ‘공기 속 먼지’가 되어버릴 수 있기에 시적이다”라고 말한 파티의 이번 전시 제목도 ‘먼지(dust)’다. 작가가 먼지로 만든 환영들은 내년 1월 19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용인=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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