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책도둑과 무해한 탐욕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4. 9. 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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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빌려주는 게 아니다'라든가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책 그리고 지식에 대한 욕심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들이다.

그리고 지식은 사용에 의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식하고 확산한다.

혼자 어떤 이익을 독점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지식에 대한 탐욕은 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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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책은 빌려주는 게 아니다'라든가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책 그리고 지식에 대한 욕심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들이다. 물론 책이라는 유체물도, 책이 담은 생각과 표현에 대한 저작권도 모두 맘대로 훔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별한 탐욕에만 적용되는 너그러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헌법으로 보장된다. 우리의 시장경제 사회가 사유재산제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소유한다는 의미의 '사유'로부터 우리는 개인이 취득하거나 형성한 재산을 개인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재산은 유형과 무형의 가치를 모두 포함한다.

지식재산과 같은 무형의 재산은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거나 독점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유형재산처럼 그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권리에 대한 인식이나 그 권익을 보호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지식재산 중에서도 산업적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소위 '상품성' 있는 특허는 신청하고 심사하고 등록하는 분명한 절차에 따라 관리되는 반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루는 독창적 표현이나 문화예술 분야의 창작물은 그 창작 시점부터 보호되는 '저작권'을 갖는다.

저작권은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적 개념으로 (다른 누구에게 양도하지 않는 한) 저자나 창작자가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권리다. 그런데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것은 좀 더 실증적인 차원에 있다. 즉 어떤 저작물이 타인의 저작물을 베꼈거나(표절),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도용했는지를 다루는 것으로 다른 창작과 관련돼서만 판단한다. 저작권 개념은 이렇게 자연적으로 출발해 실증적인 영역까지 뻗어가는데 우리 일반인들에게 이 문제는 지식을 구성하는 사상이나 사유의 유사성과 독창성이라는 관점을 통해 좀 더 일반적인 차원의 기준들을 불러낸다.

지식은 이전의 문명과 역사를 아우르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성하면서도 대체불가한 사유의 힘을 지닐 때 자연스럽게 추앙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의 본질에는 온전히 한 개인에게만 귀속되기 힘든 열린 특성이 있다. 하나의 책, 작가, 사상가는 그들을 앞서간 수많은 저작, 사상의 흐름이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사유가 압축된 독창적 표현에 대해서는 분명한 저자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배움이나 지식의 총체로서 위대한 사상가들의 존재감은 몇 개 문장의 출처를 보호한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같은 저서로 지식의 습득이나 공유방법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 평론가 피에르 바야르는 '예상 표절'이라는 급진적인 개념을 내놓기도 했다. 유사성과 창작물이 발표된 시간순서라는 단순한 기준에 기반해 판정하는 오늘날의 표절개념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랄까.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가며 그들과의 무언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사유를 닦아가는 것과 언젠가 완성될 미래를 상상하며 사유의 편린을 펼쳐놓는 것 사이, 독창성은 어디쯤 자리할까. 집단의 무의식이 영향을 끼치는 지식을 여럿이 공유(share)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의미 있지 않은가.

사용하는 것 이상을 소유하려 하는 것을 우리는 탐욕이라 칭한다. 그럼에도 사회가 사용하는 것 이상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소비재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먼저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것, 즉 '소진되는 사용'이 사유재산제도의 기본전제다. 하지만 지식은 무한하다. 그리고 지식은 사용에 의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식하고 확산한다.

혼자 어떤 이익을 독점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지식에 대한 탐욕은 무해하다.(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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