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인공지능 시대의 외국어 공부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2024. 9. 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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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여러 괴담을 몰고왔다. 로봇이 인간을 통제할 날이 온다거나 노동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떠돈다. 이런 괴담은 공포에서 시작된다. 공포는 대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불과 20여년 전 세계는 밀레니엄 공포에 떨었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앞자리가 바뀌는 연도를 인식하지 못해 기술, 보안, 안보 등 온갖 영역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란 공포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컴퓨터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성이 뒤따랐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간단한 일을 하는 사무직, 은행원이나 매표원처럼 고객을 응대하는 직무, 스포츠경기를 주관하는 심판 등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직무가 단순하거나 세밀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경우 인공지능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인류 전체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인간이 직업을 만든 것이지 직업이 인간을 만든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일이 사라진다 해도 다른 직업을 다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외국어 통역사나 번역사도 사라질 것이란 예측이 있다. 자연어 처리능력이 월등한 수준으로 높아진 덕분에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거나 통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물론 인공지능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통번역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담론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다는 또 다른 괴담으로 번져나간다.

이런 생각은 외국어 공부에 대한 무지와 오해 때문에 생겨난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우리말과 다른 단어나 문법을 습득하는 일만이 아니다. 언어는 고정된 법칙만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 따라 창의적으로 활용된다. 시, 소설, 농담, 은유는 행간의 복잡한 의미를 담아낸다. 언어의 이런 창의성은 인공지능이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창의적으로 직조된 언어를 더욱 잘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예컨대 한국어로는 '나는 밥을 먹습니다'라는 말을 중국어로는 '나 먹는다 밥'(我吃飯)이라고 표현한다. 중국어는 한국어의 조사에 해당하는 말이 거의 없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징검다리처럼 단어를 건너뛰면서 말을 잇는다. 중국어는 이렇게 세상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는 한국어보다 발화의 맥락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때문에 중국문화를 접할 때 '두루뭉술'을 잘 이해해야 한다.

외국어 공부는 단지 새로운 언어의 구조를 익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 세계, 우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역사, 가치관, 사고체계가 그 언어에 들어 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멋진 번역을 제공한다 해도 문화적 맥락과 가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우리는 외국어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함으로써 세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스페인어, 일본어, 한국어, 독일어 등 평생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서 살아온 독립학자 로버트 파우저는 '외국어 전파담'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외국어에 대한 끝없는 관심의 원천은 바로 소통의 즐거움이었다.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외국어와 더불어 살게 했다. … 이러한 발견과 만남은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지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나 자신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성서에 따르면 외국어는 신의 높이에 도달하려 한 인간의 욕망이 바벨탑 사건으로 붕괴하면서 만들어졌다. 인간은 다른 언어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면서 성장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외국어 공부는 우리의 지적 성장과 두뇌의 발달을 위해,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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