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나라 노르웨이 “국방비 2배 증액, 좌우 이견 없어”
“국민에게 안보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근본적인 임무입니다. 노르웨이의 더 강력한 국방력은 우리 주권을 위협하려는 자들을 억제하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1일 서울 성북구 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만난 뵨 아릴드 그람(Gram·52) 노르웨이 국방장관은 평화와 군사력 간 관계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우리는 새로운 안보 환경에 맞는 국방력이 필요할 뿐”이라며 힘을 통해서만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도 성향 중앙당 소속의 그람 장관은 2022년부터 노르웨이 국방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첫 방한을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람 장관은 2007년 트뢰넬라그주의 스테인셰르 시장에 당선돼 13년간 시장으로 일했다. 2020년 지방정부·지역개발부 장관에 이어 2022년 국방장관에 올랐다.
노르웨이는 노벨 평화상을 시상하는 ‘평화의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0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유럽도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감이 커지며 이 지역 국가들은 일제히 국방비를 늘리고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있다. 200여 년간 중립국 지위를 지켰던 스웨덴과 핀란드는 최근 나란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나토 창립 회원국인 노르웨이는 2036년까지 12년간 국방비를 76조원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 4월 발표했다. 당시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는 이를 두고 “역사적 증액”이라고 하기도 했다.
-국방비를 크게 늘리는 이유는.
“지금의 국방비 증액 속도는 6⋅25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대 이후 가장 빠르다. 우리는 2036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지금의 약 두 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노르웨이는 1950년대 당시 옛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비를 크게 증액했었다. 국방비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4% 수준이었다. 이후 국방비 비율이 점차 감소했지만 유럽 대륙에서 다시 전면전(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안보 상황이 다시 매우 심각해졌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10년 전 GDP 대비 1%대 중반에 머무르던 노르웨이의 국방비는 지난해 1.8%로 상승했고 올해는 2.2%로 올라갔다.
-국방비 증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때 극좌로부터 극우까지,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동의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일 순 없다. 일부 반대 목소리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스스로 국방을 강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는 초당적 합의가 이뤄졌다. 모든 정당이 뜻을 모은 국방비 증액 합의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르웨이는 해안선과 광활한 바다를 낀 나라다. 해상에서의 어업 활동, 각종 자원의 수출·수입 등을 바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군 역량 강화가 특히 필요하다고 우리는 판단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남성만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실시해 오다 2016년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그람 장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년 동안 국경수비대로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징집병의 복무 기간은 현재 1년 정도로 줄었다.
-여군 징병제를 실시한 이유는.
“징병제는 노르웨이 국방의 초석이다. 여성 병사들은 많은 상황에 남성보다 멀티태스킹(여러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능력) 등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 우리 군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현재 전체 군인의 약 30%가 여성이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나토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데.(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방비 부담을 늘려야 한다며 반복해서 다른 나토 회원국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 대선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대해 추측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나토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토는 계속 성장해 왔다. 최근에도 이웃 나라(스웨덴·핀란드)들이 가입하지 않았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세계가 배울 것이 있다면.
“유럽과 한국은 지구 반대편에 존재한다고 느껴질 만큼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세계가 점점 더 상호 의존적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나라들로부터 직⋅간접적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지속하는) 지금의 입지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지구촌 한쪽의 안보 상황이 나머지 지역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원칙을 공유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지지와 협력이 중요하다. 이번 방한의 주요 목적도 한국과의 협력을 늘리는 것이다.”
전 세계의 재무장과 국방비 증강 기조는 세계적으로 방산 협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일 그람 장관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의 양자 회담 자리에서 양국의 국방 협력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방부는 양국이 국방·안보 분야의 실질적인 협력사업 발굴을 증진시키기 위해 국장급 정례협의체인 ‘안보국방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한국과의 방산 협력에 대한 전망은.
“한국은 수준급 기술을 보유한 방산 강국이자 주요 무역국이다. 우리는 이미 한국의 K-9 자주포를 수입해 운용하고 있고, 한국에 발주해 건조한 선박들도 많다. 우리의 새로운 국방 계획에 따라 한국과 협력할 새로운 기회가 있으리라고 본다. 내가 알기로 한국은 미국에 방산 물자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노르웨이와도 협력을 크게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한 북유럽 국가. 서쪽으론 북해·바렌츠해와 접하고, 동쪽 국경으로는 스웨덴·핀란드 등과 마주한다. 러시아와도 198㎞가량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했지만 2차 대전 기간엔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았다. 격렬하게 저항하며 맞서 싸우고도 결국 5년 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중립 정책을 포기하고, 1949년 창립된 나토(NATO)에 가입, 북부 전선에서 구(舊)소련 해군을 저지하는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자 국방력 강화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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