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플로리다 학생 금서 목록에 오른 이유
미국 공립학교 도서관에서의 ‘금서(禁書·금지된 책)’ 지정 문제가 진보·보수 진영 간 새로운 전선으로 떠오른 가운데 출판계와 주정부의 법정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펭귄 랜덤 하우스, 사이먼 앤드 슈스터, 하퍼 콜린스 등 미국과 영국의 대형 출판사 6곳이 플로리다주(州) 교육 당국을 상대로 금서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올랜도 연방법원에 제기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출판사들은 주 교육 당국이 특정 도서를 금서로 지정한 것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에서는 지난해 7월 일선 학교에서의 금서 지정을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주민이 공립학교 교실이나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중 ‘성행위를 묘사하는 책’ 또는 ‘학생 연령대에 부적절한 책’이라고 판단한 책에 대해 금서 지정 신청을 할 수 있다. 신청이 최종적으로 인용되면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 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읽을 수 없게 된다.
플로리다가 이 같은 법을 시행하고 나선 이유는 과도한 성적 묘사가 아직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치에 따라 서가에서 치워진 ‘금서’ 중에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고전 명작들도 포함돼 있어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도 법제화가 가능했던 것은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이고 주의회도 공화당이 장악하는 등 플로리다의 정치 지형이 보수 우위 구도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이 법이 법리적으로도 하자 투성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에서 책 전체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인 내용을 묘사한 책을 삭제해야 하는 세부적인 기준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우리는 ‘성행위를 묘사하는’ 콘텐츠와 ‘음란물’이라는 단어에 대한 모호한 설명을 금지하는 법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피고가 된 플로리다주 정부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자료와 교육은 학교에 적합하지 않다”며 금서 조치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와 지성의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현재 보수·진보 대립이 심화하면서 금서 전선이 더욱 넓게 펼쳐지고 있다. 언론 자유 단체 펜 아메리카(PEN America)가 발표한 최신 자료(4월)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23주 학교에서 4300여 권의 책이 금지됐다. 이는 2022년 한 해 전체 금지 건수를 넘어선 수치다. 플로리다주에서는 11학군에서 같은 기간 3135권의 도서가 금지되어 미 전역 주에서 가장 많은 수의 도서가 금지됐다.
플로리다처럼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동성애, 인종 이슈 등을 소재로 한 책이 학교나 도서관에서 금지되고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주와 일리노이 등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의회가 앞장서 금서 지정을 시도하는 공공 도서관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른바 ‘금서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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