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취재 너무 힘들어”… 서방 특파원 속속 떠난다
“중국에서 ‘취재’란 충격적으로 외로운 일(a shockingly lonely business)이 됐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베이징 지국장 데이비드 레니(53)는 최근 고별 칼럼을 통해 중국을 떠난다고 밝혔다. ‘런다웨이(任大偉)’란 중국어 이름까지 만든 영국인인 그는 2018년 5월 베이징에 온 이후 220편의 ‘차관(Chaguan)’ 칼럼을 이코노미스트에 연재했다. 그는 전(前) 영국 해외정보국(MI6) 국장의 아들로, 장쩌민 시대인 1998~2002년에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한 서방의 대표적인 지중파(知中派)다. 작년에는 중국 취재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수여하는 오스본 엘리엇상을 받았다.
찻집이란 뜻을 가진 칼럼 이름 ‘차관[茶館]’처럼, 중국의 ‘속내’를 생생하게 전달해온 칼럼으로 인기를 끌어온 그는 최근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중국을 떠날 때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이라며 이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신호(8월 31일~9월 6일 자)에 실린 칼럼을 통해 “중국은 외국의 모든 비판을 일종의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의 빈자리를 채울 후임자는 아직 비자를 받지 못해 ‘차관’은 일단 연재가 중단됐다.
외국의 비판이나 정보 수집에 더는 관대하지 않은 중국에서 외신 기자와 외국 학자·컨설턴트 등이 떠나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움) 기조를 접고, ‘중국식 현대화’라는 새 국가 전략을 홍보하면서 외부 목소리를 ‘소음’ 취급하자 일어난 현상이다. ‘중국식 현대화’는 표현의 자유, 자유 시장 등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일당 체제와 계획 경제 등 ‘중국만의 공식’으로 선진국 수준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미·중 경쟁과 주변국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강력한 사회 통제와 거대한 경제 규모를 등에 업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중국에선 최근 서방권 기자들의 이탈이 가속되고 있다. 6년 새 뉴욕타임스의 중국 특파원은 10명에서 2명, 월스트리트저널은 15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두 명 있던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한국 언론사의 베이징 특파원 수도 2년 새 40여 명에서 30여 명으로 감소했다. 지난 4월 중국외신기자클럽이 기자 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71%가 자신의 휴대폰이 중국의 해킹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81%는 취재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간섭과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지난해 7월 간첩 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처벌을 강화한 ‘반(反)간첩법’ 개정안을 시행한 것도 취재 활동엔 큰 부담이다. 개정된 법은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등으로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죄를 입증하지 않고 정황만 있더라도 벌금 5만위안(약 900만원)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기자만이 아니다. 외국 학자들의 중국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중국 본토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거나 연구자로 일하는 외국인들은 중국 내부가 아닌 ‘당신들 나라’에 대한 논문을 쓰라는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의 한 글로벌 연구소 관계자는 “심적 압박으로 인해 외국 학자들은 사석(私席)보다 정부 허가를 받고 열리는 포럼에서 발언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고 했다. 영국 BBC는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인 2021~2022년 홍콩 8개 공립대학을 떠난 학자가 360명이라고 했다. 홍콩에서 외국인 학생 등록은 2019년 이후 13% 줄었다.
외국 컨설턴트들의 퇴출은 가속됐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당국은 국가 안보와 밀접한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며 베인앤드컴퍼니·민츠 등 미국 컨설팅 업체들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중국에 부정적인 통계 등을 발표해온 미국 갤럽은 지난해 30년 만의 중국 철수를 결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할 시기라고 선언하면서 외국인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외부와의 단절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자신감은 커진 탓에 세계에 자국 기준과 철학을 강요하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에는 중국의 개혁파가 외신이나 외국 전문가의 비판을 국내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 언론사들의 외신 보도마저 제한되는 형국이다. 전랑(늑대 전사) 외교 기조 속에 중국의 외교관·학자는 대외 소통보다 중국 입장 방어에 집중한다.
다만 중국은 외국인들의 이러한 불만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급속도로 초(超)강대국으로 발돋움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견제에 나섰고, 외국 매체와 기관들의 비판은 중국 공격을 위한 명분 쌓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든 중국에 남아 보려고 애쓰는 외국인 기자나 컨설턴트들은 정보 획득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고위급이나 전문가 접촉이 어려워진 것은 둘째 치고, 공신력 있는 자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중국의 유료 금융 데이터 제공 업체인 윈드가 갱신하지 않는 통계는 갈수록 많아지고, 정부는 지난해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한 것처럼 돌연 통계를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한다.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사이트 접속을 막은 중국 당국은 인터넷 감시망을 우회하는 가상 사설망(VPN) 또한 강도 높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 검열을 감시하는 미국 비영리 단체 그레이트 파이어는 VPN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인 익스프레스VPN과 아스트릴의 중국 서비스 이용 속도가 지난 60일 동안 각각 41%, 11% 느려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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