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희생 번트 시키면 학부모들이 난리 친다”
고교야구 산증인 76세 안계장 은평BC 회장
스포츠클럽 팀 은평BC(베이스볼클럽)의 안계장(76) 회장이 야구장을 찾으면 내로라는 고교야구 감독들이 깍듯이 구십도 절을 한다. 올해 나이 일흔 여섯. 2022년 18세 이하 팀 창단 때 감독이던 명함 직함이 회장으로 바뀌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 푸른 청춘들의 심장이 뛰는 그라운드에 있다.
올 시즌 고교야구는 31일 봉황기 대회 폐막으로 지역 선발 팀만이 출전하는 전국체전만을 남겼다. 1000만 관중을 향해 달리는 프로야구와는 달리 고교야구는 썰렁한 관중석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고교 야구의 산 증인이 진단하는 고교야구의 모습은 어떨까.
-옛날 고교야구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지금 고교야구는 학부형들이 주주인 주식회사나 다름 없다. 대부분 학부모 돈으로 운영되니까. 학부형들은 자기 애들이 다 최고인줄 안다. 일선 감독들도 학부모에 휘둘려 인성이나 실력, 그리고 경기 승부에 관계 없이 모든 선수들이 다 뛰게 배려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당장 뛸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 학부형으로부터 전화 온다. 내가 감독할 때는 가능성 없는 선수에겐 다른 길을 찾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요즘엔 그러면 큰일 난다. "
-선수들 체격이 훨씬 좋아지고 공이 빨라진 것은 긍정적인 신호 아닌가?
“지금은 프로 진출에 초점을 맞춰 야구 사설 아카데미에서 과외를 한다. 겉에 드러난 기량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구속만 빨라지면 뭐하나. 기본기 약하고 경기운영능력은 떨어진다. 공 스피드만 끌어올리려다 보니 무리해서 어깨가 빨리 망가진다. 타자도 마찬가지다.
한 학생이 타격 테스트를 받는데, 타구 발사각만 신경 쓰더라. 지도자들이 공을 먼저 맞추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옛날 선수들은 자질도 좋았고, 의욕도 있었다. 그리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 정신이 있었다. 요즘 선수들은 자기 혼자 잘 치고 잘 던지면 되는 줄 안다. 자기 아들 4번타자라고 생각하는 학부형들이 가만 있겠나. 그래서 번트 훈련 시키기도 쉽지 않다. "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가.
“현행 주말리그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야구도 교육의 연장이다. 그런데 쉬어야 할 토·일요일에만 야구경기 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 논리대로라면 실업계 학교 실무교육도 주말에 해야 옳다. 정부에서 학교 체육을 너무 홀대한다. 학교별 편차도 너무 심하다. 어떤 학교는 등록 선수가 70명이나 된다. 그 선수들이 어떻게 다 뛸 수 있는가. 선수들이 입학 원서 내는데 1,2지명 다 안되면 한 학교에 몰아넣고 그 다음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교육부의 행정편의주의다.
학교는 골머리가 아픈데 선수들에게 나가라는 소리는 또 못한다. 그러면 스포츠클럽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은평BC 처음 만들었을 때 운동장도 구하기 어려웠을 만큼 기존 팀들의 텃세도 심했다. 옛날보다 사정은 좀 나아졌지만, 선수나 학부형들의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팬들로 가득 찬 야구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스포츠 클럽이 초중고에 완전히 자리 잡은 게 일본이다. 선수들의 애교심, 팬들의 애향심이 늘 고교야구를 받쳐주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바탕이 없으니 프로가 생기면서 고교야구 인기가 그대로 옮겨갔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교 야구의 정신적 공간인 동대문 야구장까지 철거할 정도로 야구, 그리고 체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올해 폭염이 극성을 부렸는데 선수들은 수은주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뱉어내는 인조잔디 위에서 야구했다. 민원 때문에 조명시설이 있어도 야간경기는 아예 못한다. 요즘엔 학교 훈련할 때도 시끄럽다는 민원에 시달린다고 들었다.”
-손주 재롱 즐길 나이에 아직도 그라운드에 남아계신 이유가 궁금하다
“2017년 대학연맹 회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암 진단을 받아 일부 장기를 떼어냈다. 당시 수술도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서약서까지 썼다. 요양원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려 했는데, 3년 정도 지나니 하늘이 도왔는지 거짓말처럼 회복됐다. 그 때만 해도 야구와의 인연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서울 첫 스포츠클럽 창단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야구인으로 마지막 힘을 보탤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돌아왔다. 지금 고2 친구들과는 중학 팀으로 같이 시작했다. 처음엔 감독을 맡다가 지금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겼다. 나는 전체 회의할 때 가끔 의견을 내는 정도다.”
-야구와 인연을 맺은 건 언제인가.
“배재중-선린상고-고려대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광환 전 LG 감독이 대학 1년 후배다. 4학년 때 허구연 현 KBO 총재가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대학 졸업 후 전남고 생물교사로 부임했는데, 그곳에서 10여년간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팀이 해체되고나서는 배재고, 선린상고, 휘문고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프로에서 이름을 날린 제자들이 많을 것 같다.
“이순철(현 프로야구 해설위원) 김태업(별세) 김정수(전 해태)가 내가 처음 감독을 맡은 전남고 선수였다. 학교가 공립으로 전환되면서 야구부가 해체되는 바람에 광주내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 노찬엽(배재) 이병훈(별세·선린상고) 임선동 김선우 류택현(휘문) 등이 다 내 제자들이다. 내가 무서웠는지 졸업한 다음엔 나보다 아내에게 더 많이 연락하더라. 난 술 안줏감이었을 거다.”
-이후 경력도 매우 다채로운데.
“대만프로야구 창립 멤버인 준궈 베어스 구단주하고 선린상고 감독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도와달라고 해서 한국인 첫 코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95년 김인식 감독이 OB 사령탑에 오르면서 스카우트 부장을 맡았다. 당시 내 최고 히트작이 타이런 우즈다. 미국 가서 봤는데 방망이를 정말 기가 막히게 쳤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트라이아웃 전날 우리가 반드시 뽑을 테니 슬슬 하라고 전했는데 정말 헛스윙만 했다. 그때 우즈 연기가 대단했다.
내가 한 곳, 한 분야에 오래는 못 있었던 것 같다. 이후 필리핀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해봤고, 에이전트도 해봤다. 이대은이 시카고 컵스에 입단할 때 내가 다리를 놨다. 고성에서 리틀야구단 감독도 했고, 침체에 빠진 대학야구 연맹 회장을 맡아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야구와 인연을 맺으실 생각이신가.
“내 기력이 떨어질 때까지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아내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됐다. 자식들은 결혼해서 자기 인생 산다. 남원 사는 둘째 아들이 야구와 인연 맺고 있는데 자기한테 오라고 하더라. 남원에 야구장 근사하게 지어진 모양인데, 가르치는 사람이 없고, 돈이 드니 배우려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환경 어려운 애들 모아서 야구 가르치는 게 마지막 꿈이다.”
☞안계장은
배재중-선린상고-고려대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광환 전 LG 감독이 대학 1년 후배. 대학 졸업 후 전남고 생물 교사로 일하다 10여 년간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이후 배재고, 선린상고, 휘문고 등에서 야구를 가르쳤다. 이순철, 김정수, 노찬엽, 임선동, 김선우 등이 제자들이다. 대만 프로야구 준궈 베어스 코치, 프로야구 OB(현 두산) 스카우트 부장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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