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도 서울도… 영화배우들 “연극 무대로 갑니다”

이태훈 기자 2024. 9. 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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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박성웅·로다주가 연극 무대에 서는 이유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불치병에 걸린 남자 ‘프라이어’(사진 아래) 앞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혼돈의 시대를 상징하듯 예언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손호준과 유승호가 ‘프라이어 월터’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글림컴퍼니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의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캐스팅 보드엔 연극 무대 경험이 거의 없던 젊은 배우들 이름이 가득하다. 남자 주역인 백인 명문가 출신의 ‘드랙퀸’ 역할인 ‘프라이어 월터’는 손호준과 유승호. 손호준은 백상예술대상 조연상 후보에 오른 드라마 ‘눈이 부시게’(2015)와 예능 ‘삼시세끼’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유승호는 ‘집으로’(2002)의 아역 이후 성인 연기자로서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폭넓은 연기를 했다. 둘 다 연극은 처음이다.

여자 주역이라 할 ‘하퍼 아마티 피트’도 마찬가지. 여러 영화와 광고 모델로 익숙한 고준희, 드라마뿐 아니라 TV 축구 예능으로도 고정 팬을 확보한 배우 정혜인이 맡았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환상을 보는 여자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세기말적 불안과 공포를 포착한 연극.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함께 받았고, 이전 국내 공연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은 작품이다. 28일까지, 5만~12만원.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에 소설 창작을 통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교수와 대학생으로 출연한 문소리(왼쪽)와 이현우. /라이브러리컴퍼니

◇영화·드라마 속 배우들, 무대로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신구·박근형이나 ‘맥베스’의 황정민·김소진 등은 무대가 고향인 배우들. 하지만 최근엔 주로 영화와 TV 드라마로만 익숙하던 배우들이 연극 무대로 향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사운드 인사이드’엔 배우 문소리와 함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메이퀸 며느리’로 눈도장을 받은 서재희가 주인공인 예일대 교수 ‘벨라’ 역을 함께 맡았다. 창작에 관해 이야기하다 마음을 열게 된 교수에게 힘든 부탁을 받는 예일대생 ‘크리스토퍼’ 역에도 영화 ‘기술자들’ ‘연평해전’ 등에 출연했던 이현우가 다른 젊은 남자 배우들과 함께 캐스팅됐다. 이현우 역시 무대 경험이 거의 없다.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 ‘일 테노레’ 박천휴 작가의 첫 연출작. 토니상을 받은 탄탄한 텍스트만큼이나 회전 무대와 조명을 섬세하게 활용하는 연출도 호평받고 있다. 내달 27일까지, 6만~7만원.

지난 토요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연극 ‘랑데부’엔 배우 박성웅과 문정희가 출연 중이다. 타인과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로켓 과학자 남자와 성격 드센 중국음식점 여사장이 아버지의 기억을 매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려가는 로맨틱한 연극. 관객들은 박성웅과 문정희가 객석을 향해 눈을 맞추며 말을 걸 듯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21일까지, 7만7000~8만8000원.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브로드웨이 연극 데뷔작 ‘맥닐’ 포스터. /링컨센터

◇‘아이언맨’도 브로드웨이 데뷔

스타 배우들이 줄줄이 무대로 향하는 것은 브로드웨이도 마찬가지다. 5일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선 마블 히어로 영화의 ‘아이언맨’으로 수퍼스타가 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59)가 연극 ‘맥닐’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한다. 인공지능(AI)에 집착하는 소설가 역할. 1983년 오프브로드웨이 연극 출연이 무대 경험의 전부인 그는 “마지막 캐스팅보드에 얼굴을 올린 지 40년이 넘었지만, 빠르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조지 클루니(63)는 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와 같은 내용의 연극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으로, 덴절 워싱턴(69)은 연극 ‘오셀로’로 각각 내년 봄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예정이다. 클루니 역시 브로드웨이 데뷔이고, 워싱턴은 7년 만의 무대 복귀작이 된다. 뉴욕의 연극 팬들은 내년 가을 배우 키아누 리브스(60)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한다는 뉴스에도 가슴 설렌다.

2인극 ‘랑데부’에 함께 출연 중인 문정희(왼쪽)와 박성웅. /옐로밤

◇서울·뉴욕, ‘스타 파워’ 동상이몽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브로드웨이에선 신작 뮤지컬 초기 제작비가 편당 2700만달러(약 360억원)로 뛰었다. 그런데도 토니상을 받고 평론가들의 호평이 쏟아지더라도 투자 회수에 필요한 최소 기간으로 여겨지는 2년 공연도 못 채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제작자들에게 ‘스타 파워’를 앞세운 연극은 투자 위험은 낮추고 성공 가능성은 높이는 선택.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흥행 예측이 어려운 신작 뮤지컬 대신 ‘할리우드 셀럽’들의 ‘스타 파워’를 앞세워 그 제작비의 절반이면 만들 수 있는 연극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내에선 영화 시장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글로벌 OTT의 영향으로 드라마 제작비도 치솟으면서 제작 편수가 줄어,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박성웅, 손호준, 유승호 등 여전히 바쁜 배우들이 연극에 도전하는 이유를 설명하진 못한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연극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벚꽃동산’의 전도연 등의 활약에 자극받은 젊은 배우들이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도전 욕구와, 장기 공연 대극장 연극의 ‘착시 효과’를 걷어내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연극 시장에 돌파구를 열고 싶은 제작사들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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