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인공자궁 쾌거인가… ‘사랑과 안전’ 덕분에 부모가 됐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근미래의 풍경 3회 #인공자궁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뮤지션이랑 제일 핫한 배우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 거 같았는데, 아니네요. 지지고 볶는 건 모든 부부가 똑같네요.”
사회자가 말했다. 뮤지션과 배우는 웃으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내 맘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지면 나도 내 맘대로 행동하지 않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두 분, 축하드릴 소식이 있다면서요?”
사회자가 다음 화제를 꺼냈다. 카메라 옆에서 조연출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예, 그간 발표를 미뤄왔는데요, 저희가 다음 달에 세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됩니다.”
뮤지션이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세 아이라고요? 이야, 축하드립니다. 아니, 그런데 다음 달 출산인데 예비 엄마가 어떻게 이렇게 날씬해요?”
이유를 알면서도 사회자가 물었다. 배우가 대답했다.
“제가 ‘사랑과 안전’을 이용하고 있어요.”
“사랑과 안전? 아, 인공자궁 말씀이시죠?”
사회자가 놀란 표정을 연기했다.
“네, 그렇게 부르는 분들도 계시죠. 혐오 표현을 쓰는 분도 있고. 이해는 해요.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보시는 거죠. 그런데 시험관 아기도 처음엔 엄청난 논란거리였답니다.”
“많은 예비 부모를 돕는 고마운 기술인데,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죠. 사랑과 안전으로 부르겠습니다.”
사회자가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제 누님이 자연 출산으로 첫째를 낳고, 사랑과 안전으로 둘째를 낳으셨거든요. 누님이 저희를 설득하셨어요. 이거 너무 좋다, 배우는 체중 조절도 해야 하는데 왜 엄마나 아이나 쓸데없이 부담을 감수하느냐면서요.”
뮤지션도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처음엔 저도 썩 내키진 않았는데 산부인과 상담을 받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랑과 안전이 엄마는 물론이고 아이 건강에도 더 좋아요. 사실 당연한 건데, 예비 엄마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외부 자극이나 충격을 다 차단할 수는 없잖아요. 길에서 간접흡연을 할 수도 있고, 타고 있던 차가 급정거를 할 수도 있고요. 제 입에 들어가는 것 중에도 독이 많겠죠. 그러니까 입덧을 하는 거잖아요. 반면에 사랑과 안전에서는 아기들이 청정한 환경에서 24시간 모니터링을 받아요.”
배우는 자신이 이용하는 ‘클리닉’을 ‘산부인과’로 바꿔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대찬성이었습니다. 출산이 원래 되게 위험한 행위예요. 100년 전만 해도 아이를 낳다가 숨지는 여성이 드물지 않았죠. 지금도 있습니다.”
대본에는 최신 통계도 적혀 있었지만 뮤지션은 그냥 ‘지금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세 쌍둥이를 가지신 건가요?”
“아뇨. 임신을 세 번 했고, 그때마다 수정란을 사랑과 안전으로 옮겼어요. 수정란 두 개를 냉동 보관하다가 세 번째 수정란이랑 시기를 맞춰서 해동했죠. 그러니까 세 아이가 수태 시기는 다르고 출산 예정일은 같아요.”
배우가 말했다.
“아내랑 대화를 오래 했어요.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 몇 살 터울이 좋을까. 저희가 딸 둘, 아들 하나를 얻을 예정인데, 얘들이 서로 오빠, 동생 하지 않고 친구처럼 함께 자라면 좋겠어요. 육아 선배들도 그러데요. 한 번에 끝내라고. 사랑과 안전 덕분에 이런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됐어요.”
“태교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과학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제가 원할 때면 언제든 아기들에게 음성 편지를 보낼 수 있어요.”
“평소엔 아내 심장 박동 소리가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져요. 그걸 제 심장 소리로 바꿀 수도 있고, 애기들 심장 소리를 저희가 들을 수도 있죠. 애들에게 들려주는 음악은 저희가 함께 골라요.”
뮤지션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앱을 켰다. 화면에 세 태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청자 여러분, 두 분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음성 편지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뮤지션과 배우가 품에서 편지를 꺼내더니 손을 잡고 한 문장씩 번갈아 읽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배경음으로 작게 흘렀다.
“사랑하는 우리 산이, 별이, 바람이. 잘 크고 있지? 다음 달이면 드디어 얼굴을 보겠구나. 엄마 아빠는 너희 만날 생각에 떨리고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단다. 엄마는 너희들이 쓸 아기 용품들 고르느라 하루에도 몇 시간씩…….”
같은 시각 방송국 앞에서는 ‘인공자궁에 반대하는 종교인 모임’이 시위를 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정란 하나가 인공자궁에서 임신 30주 차까지 건강하게 자랄 확률은 20%대에 불과합니다. 인공자궁 기업은 제공받은 수정란을 초기에 12개로 복제해 배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태아를 살해하는 방법으로 최종 성공률을 높입니다.’
다른 피켓에는 이런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지난해 인공자궁에서 숨진 태아 4700명!’
‘인공자궁=살인 도구, 사랑과 안전=살인 공장.’
‘인공자궁이 저출생 대책이라는 정부와 방송사는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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