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오텔로’ 이아고와 ‘토스카’ 스카르피아, 누가 진짜 악당인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2024. 9. 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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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의 ‘토스카’에 스카르피아 역으로 출연한 바리톤 사무엘 윤(왼쪽)과 토스카 역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 사진 출처 로열오페라 홈페이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이아고에게는 손수건이 있었지, 내게는 부채가 있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1900년) 1막에 나오는 악당 스카르피아의 노래 일부다. 이아고는 17세기 초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오셀로’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년)를 서울 예술의전당이 8월 18∼25일 공연하고 이어 서울시오페라단이 이달 5∼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푸치니 ‘토스카’를 올림으로써 서울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 역사상의 두 대표 악한들을 잇달아 만나게 되었다.

왜 손수건이고 왜 부채일까? ‘오텔로’에서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의 부하 이아고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주군 오텔로를 질투와 파멸로 이끈다. ‘토스카’에서 로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늘 성당에 나와 기도하는 아타반티 부인의 부채를 미끼로 삼아 여주인공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고 그에게 덫을 놓는다.

두 악당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토스카’의 1막 성당 장면에 나오는 테데움(찬미가)에서 스카르피아는 거룩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토스카, 너는 내가 신도 잊게 만드는구나”라며 여인에 대한 불붙는 욕망을 토로한다. 그에게 악행은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편 ‘오텔로’에 나오는 노래 ‘크레도’(신앙고백)에서 이아고는 “나를 자신과 닮게 창조한 잔혹한 신을 믿노라”라고 노래한다. “씨앗이나 사악한 원자의 비겁함으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다. 인간이기에 악당이 되었고 내 안에 깃든 원초적인 더러움을 느낀다. 맞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이런 이아고에게 악(惡)이란 수단이라기보다는 행동 원칙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살면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 쉬울까? 두 오페라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긴박하고 극적이며, 두 작품에 나오는 음악도 팽팽하게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과 그 밖의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악당이 빚어내는 인물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푸치니와 그의 대본 작가 자코사·일리카, 원작자 사르두가 만들어낸 스카르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베르디의 ‘오텔로’에 형상화된 이아고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의 노래 ‘크레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없다. 오페라의 대본을 썼고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창작해 대본에 집어넣은 노래다. 보이토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1868년)에서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악마의 전형을 창조한 바 있다. 그가 21세 때인 1863년에 쓴 시 ‘이원론(二元論·dualism)’은 선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

말하자면 이 오페라의 대본 작가는 당대 대표 ‘악(惡) 전문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악행 대부분은 악 자체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악의 화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못 이겨 남의 희생 따위는 깔아뭉개는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며 만났던 크고 작은 악인들을 떠올려 보면, 역시 그렇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악당 스카르피아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노래한다. 사무엘 윤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인간이 갖는 악한 감정의 극한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어둡고 악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며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스카르피아가 남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지시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늘 그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해 왔어요. ‘능숙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죠. 오페라의 수많은 빌런(악당) 역 중에 이렇게 잘 표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에 자신을 바치고 악의 추구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이아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스카르피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두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면 문제가 더 잘 풀려 나갔다. 그것이 지상의 악에 대한 나의 작은 믿음의 고백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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