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허허벌판서 “디자인 주면 차 만들겠다”…포니부터 GV90까지 ‘개척정신’
울산 전기차 신공장에서 생산되는 1호차는 제네시스의 초대형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90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선망의 대상이 될 최상위 럭셔리카의 탄생은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가 양산된 지 50년 만에 이루는 성과다.
마이카 시대를 연 포니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창업 1세대의 헌신으로 탄생했다. 두 형제는 미국 포드와 50대 50 합작투자 회사 설립을 추진했지만 1973년 계약이 틀어지자 독자 노선을 택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현대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고 정세영 사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추진했다.
자동차 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고유모델을 만들겠다는 현대차의 계획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코웃음거리로 여겨졌다. 포니 디자인을 맡았던 조르제토 주지아로마저 처음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던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를 일컬어 ‘달리는 국기’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자력으로 수출하는 국가는 그 이미지 덕분에 다른 상품들도 덩달아 높이 평가된다는 믿음이 강했다.
정주영·정세영 형제는 1973년 말 주지아로를 한국으로 초대해 울산에서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줬다. 먼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땅을 구경시켰다. “여기에 공장을 세울 계획입니다. 당신이 디자인할 자동차는 새로 들어설 공장에서 만듭니다.” 제대로 된 공장도 없이 고유모델을 디자인해 달라는 제안에 주지아로는 반신반의했다.
이어 주지아로는 미포만 일대를 둘러봤다. 이곳에선 조선소 건설 공사와 거대한 유조선 건조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주지아로는 두 형제가 자동차 산업에 얼마나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했다. 당대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 ‘슈퍼스타’ 반열에 올라 있던 주지아로는 포니 디자인을 맡아도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전 세계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며 차관을 끌어오고, 영국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BLMC 출신 인물을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를 맺는 등 고유모델 양산을 위한 준비 작업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현대차의 엔지니어들은 이탈리아에서 설계 노하우를 습득하고 일본에서 엔진 기술을 배우는 등 열정을 불태웠다.
현대차는 1976년 1월 포니 양산을 본격화했다. 포니는 시판 첫해에 1만726대를 팔아 단숨에 국내 시장 점유율 1위(43%)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에콰도르 수출을 기점으로 해외 무대를 넓혀 1986년 2월 포니가 미국 시장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의 고급차 명칭에 불과했던 제네시스가 2015년 11월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것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비전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정의선 회장이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추진한 초기에는 현대차 내부에서도 ‘대중 브랜드로 시작한 현대차에 럭셔리 브랜드가 왜 필요하냐’는 회의적 반응이 많았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완성차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판매량 증대 못지않게 최고의 기술력과 완성도를 갖춘 ‘명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경쟁력을 굳건히 하고, 한국 자동차 산업을 진일보시키기 위해선 ‘달리는 국기’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제네시스 라인업의 마지막 퍼즐이 될 GV90은 내년 말 시험 생산을 시작해 2026년 초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김연성 한국경영학회 회장(인하대 교수)은 “현대차그룹의 약진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이 기업의 성장이 곧 한국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며 “도전에 한계선을 긋지 않고 사업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의선 회장의 모습에서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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