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어떤 싸움의 記錄(기록)

한겨레 2024. 9. 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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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法(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죄)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시장)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문)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시’,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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