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農舞(농무)
한겨레 2024. 9. 2. 21:25
장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시’,
신경림의 ‘농무’(창작과비평사, 1975)에서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겨레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대통령 불참’ 국회 개원식…87년 민주화 이후 이런 적 없었다
- 악어, 척수 자르고 뇌 쑤셔도 몸부림…“에르메스 학살 멈춰라”
- “사도광산 강제동원이냐” 묻자…김문수 “공부 안 해서 모르겠다”
- ‘남산철탑 살기 분출’ 풍수가를 ‘공관 손님A’…김용현 “은폐 아냐”
- 대통령실 “이재명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 증가’ 주장, 의료진 사기 저하”
- 검찰, 문 전 대통령 퇴임 뒤 문다혜 금전 거래도 수사
- ‘이태원 참사’ 경찰 최고 ‘윗선’ 김광호 전 청장에 금고 5년 구형
- 말도 귀여워…신유빈, 바나나우유 광고 찍고 “많이 마셔 행복”
- [단독] 일본 역사왜곡 대응 연구 예산, 윤석열 정부서 ‘반토막’
- 정부, 응급실에 군의관 ‘핀셋 배치’ 하면서도 “걱정할 상황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