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가 인질들 죽였다” 이스라엘 최대 규모 시위·총파업
학교·은행·공항 등 멈춰…‘정권 전복 도화선’ 가능성도
가자 전쟁 휴전 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하마스에 끌려갔던 인질 6명이 시신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에선 휴전에 미온적인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최대 노동조합은 총파업에 나서며 정부를 압박했다.
조합원이 80만명인 최대 노조 히스타드루트는 2일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하며 하루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이 시작되자 시위대가 전국 주요 도로를 봉쇄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일부 정부 부처, 상당수 학교와 버스회사, 은행, 병원 등도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했다. 최대 공항인 벤구리온 국제공항도 이날 오전 8시부터 2시간 가까이 운영을 멈췄다.
전날 주요 도시에선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주최 측인 ‘인질·실종자 가족 포럼’은 텔아비브에서만 55만명 등 전역에서 70만명이 시위에 참석했다고 CNN에 밝혔다. 텔아비브에선 시민들이 희생된 인질 6명을 상징하는 6개의 관을 따라 행진하며 주요 도로를 점거했다. 예루살렘에선 분노한 시위대가 총리실을 에워싸며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가 죽였다’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지금, 지금 (데려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하마스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여론의 분노는 ‘국경지대 철군 불가’ 방침을 고수하며 휴전 협상에 어깃장을 놓은 그를 향하고 있다. 특히 인질 6명 가운데 3명은 지난 7월 한때 합의에 근접했던 ‘3단계 휴전안’이 타결됐다면 휴전 1단계에서 바로 풀려났을 이들이라 시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24세 아들이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는 에이나브 장가우커는 연단에 올라 “네타냐후가 인질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면서 “그는 그들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텔아비브 시민 슐로밋 하코헨은 “정부가 인질들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섬광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진압했으며, 텔아비브에서만 29명을 체포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시위와 파업이 전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가디언은 “시민들의 폭발한 분노가 휴전과 인질 석방을 이끌고 네타냐후 정권을 전복해 새 선거를 요구하는 운동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외신들은 히스타드루트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히스타드루트가 총파업에 나선 것은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강행하며 이에 반기를 든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해임했던 지난해 3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파업으로 이스라엘 경제 상당 부분이 마비됐으며,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갈란트 장관 해임 결정을 취소하고 사법부 무력화 입법 계획도 보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갈수록 거세지는 휴전 압박에도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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