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평가원 교과서, 19세기 열강 ‘우위’ 강조
일본의 책임·과거사 청산도 최소화…타 출판사와 대조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1 교과서가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우세한 경제력과 군사력” “우수한 무기”와 같은 문구로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 역사학계는 서구 열강의 ‘우위’를 강조해 제국주의 질서를 인정하는 서술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국주의를 “침략 행위 합리화”라고 비판적으로 설명한 다른 한국사 교과서 7종과 대조된다.
2일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1 교과서 3단원 ‘근대국가 수립의 노력’ 도입부를 보면 “19세기는 산업혁명을 이룬 서구 열강이 새로운 문물과 시스템을 갖추고 우세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세계를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식민지 확보에 나서는 시대였다”고 기술돼 있다.
소단원 ‘열강의 통상 요구와 대응’ 학습목표에도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우수한 무기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침략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역사교사 A씨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동아시아 국가보다 우세하다는 평가를 전제로 한 뒤, 제국주의 침략을 우월한 세력의 정당한 행위로 옹호하는 서술”이라고 했다.
본문에선 제국주의를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이 상품 판매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확보하고 잉여 자본을 투자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식민지와 새로운 통상로를 확보하려 한 대외 팽창 정책”으로 정의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서술로 보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앞세우는 서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학력평가원을 제외한 출판사의 한국사1 교과서에서는 제국주의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배권” “배타적·침략적 민족주의” 등으로 정의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에 초점을 두고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해냄에듀는 1899년 만들어진 그림 ‘야만-문명’을 삽화로 제시하며 “중국인이 프랑스 군인을 공격하는 쪽에는 ‘야만’, 프랑스 군인이 중국인을 공격하는 쪽에는 ‘문명’이라고 적혀 있다”며 “서구 열강은 식민지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침략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펴면서 이를 야만인을 문명의 길로 이끄는 백인의 의무라고 합리화하였다”고 썼다.
리베르스쿨은 ‘제국주의와 골상학’이라는 탐구자료를 제시해 서구의 해부학자들이 골상학을 바탕으로 터무니없이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웠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래앤은 배타적·침략적 민족주의, 독점 자본주의, 사회 진화론과 백인 우월주의가 결합해 제국주의가 나타났다고 도식으로 표현했다.
한국학력평가원이 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이 있는 일본에 관한 서술을 ‘해방 이후’ 단원에서 최소화하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는 ‘자기주도 역사 탐구’로 반민특위 총결산 통계를 제시하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배경을 생각해보자는 질문을 하는 데 그쳤다.
반면 다른 출판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과거사 청산 사례를 비교 자료로 함께 제시했다.
해냄에듀는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프랑스 모리스 파퐁 재판 등 한 페이지를 할애해 한국과 다른 나라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비교하는 탐구자료를 담았다. 지학사는 두 페이지에 걸쳐 ‘미완의 과제, 반민족 행위 청산’ 탐구자료를 냈다.
탁지영·김원진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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