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회복에 쓸 돈은 어디로 갔나 [마켓톡톡]
수출 11개월 연속 증가
소비지수 쪼그라들어
실질임금·가구 흑자 ↓
도리어 부동산 급등해
정부가 수출 대기업들에 법인세 감세와 면세라는 혜택을 줬지만, 투자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가계 구매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발 가격 급등세도 내수 실종을 부추겼다. 수출과 내수 사이에서 온도차가 발생한 과정을 알아봤다.
우리나라 수출은 8월에도 늘어나 11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38.8% 증가했고, 무선통신기기는 50.4%, 컴퓨터는 183.2% 늘어났다.
하지만 내수의 한축인 기업투자는 올해 상반기 내내 부진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2023년 3분기부터 2024년 2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그나마 기업 투자가 7월 들어 상승세로 돌아선 건 주목할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투자액이 64.9% 증가하며 1년 전보다 18.5% 늘어났고, 국내기계수주도 14.5% 증가했다.
내수의 다른 축인 소비 침체도 심각한 수준이다. 소매판매가 올해 2분기에 -2.9%를 기록해 14년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분기로 따지면, 9개 분기 연속 감소다. 소매판매는 3분기의 시작인 7월에도 1년 전보다 1.9% 줄었다. 음식점을 포함한 소매판매는 7월에 2.3% 감소했다.
■ 소비 침체 이유❶ 실질임금=그렇다면 수출이 2023년 10월부터 지난 8월까지 연속해서 증가했는데도, 소비가 쪼그라든 이유는 뭘까. 수출 기업들의 임금 상승 수준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구매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질임금은 2분기에 0%대 증가(4월 1.4%, 5월 0.5%, 6월 0.9%)에 머물렀다. 상반기 기준으론 지난해보다 0.4% 줄었다. 실질임금은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0.2%, 1.1% 감소했다.
물가를 반영한 가구 실질 흑자액 역시 8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올해 2분기 가구의 실질 흑자액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2021년 팬데믹 기간 95만9000원에 가까워졌다. 가구 흑자액은 처분 가능 소득에서 이자비용·세금 등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을 비롯한 소비지출을 뺀 여윳돈을 말한다. 가구는 흑자액으로 대출을 갚고, 자산을 구매한다.
통계청이 8월 마지막주에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 흑자액은 2023년 2분기에 1년 전보다 10.3% 줄었고, 2024년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5.3%, 1.1% 감소했다.
■ 소비침체 이유❷ 부동산=수출이 늘었는데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부동산'에서 찾을 수 있다.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8월 4주에도 전주보다 0.26% 올라 23주 연속 상승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27일 "왜 우리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졌는지를 성찰하는 (정부의) 자세가 부족하다"며 "강남 부동산의 초과 수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 공급 위주 정책은 바뀔 것 같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수요 압박에 의해 집값이 오르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며 "그럴 때는 정부가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증가세에도 다시 경고등이 들어왔다. 8월 수출 증가가 7월보다는 둔화했고, 시장 기대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1일 "한국의 8월 수출 증가율은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예상치인 13.0%를 밑돌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자동차 수출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정부가 "내수 시장으로 온기를 골고루 퍼지게 할 것"이라던 '수출의 활력'은 어디로 간 걸까. '수출의 활력'인 기업의 이익이 세금, 배당, 급여에도 쓰이지 않았다면, 이익잉여금 형태로 사내에 남아있다는 얘기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합친 것으로 현찰, 부동산, 생산설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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