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한국이 진앙지"…텔레그램 규제가 답일까

박재령 기자 2024. 9. 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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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규제, 모니터링 강화 등 쏟아지는 대책에 전문가·심의 당국 반응은
WSJ "전세계 딥페이크 성착취 53%가 한국인"… 처벌 강화엔 한 목소리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착취 영상이 기승을 부리면서 플랫폼 규제 강화, 심의 모니터링 확대 등 각종 근절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조치들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으로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 관련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성착취물이 주로 유포된 메신저 텔레그램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암호화 기술로 보안성을 강조해 각광받았지만 2019년 n번방 사건 등 그 보안성으로 성범죄 '온상지'가 됐다는 지적이다. 텔레그램 CEO인 파벨 두로프는 지난달 28일 프랑스 현지에서 기소됐는데 주요 혐의 중엔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조직적으로 유포했다는 내용이 있다.

2022년까지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TF 팀장으로 일했던 서지현 검사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텔레그램의 협조를 구할 수 없다는 변명을 멈추고 수사 협조 및 게시물 차단을 강력 요구”라며 “텔레그램의 수사 비협조 시 앱스토어에서 (일시적) 앱 삭제” 등의 방안을 거론했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엔 텔레그램과 같은 '사적 대화방'이 적용 대상에 빠져 있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책 논의의 핵심이 '텔레그램 규제'로 흘러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텔레그램에 협조를 구하는 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메신저 규제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는 통화에서 “일반적인 메신저에서 사적으로 이뤄지는 데까지 일일이 개입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 문제가 있다. 법에 (적용 대상으로) 텔레그램만을 명시할 순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책 중 하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대응 강화다. 텔레그램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방심위 등 심의 기구의 시정조치 요구는 대부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심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지난해 디지털성범죄심의국의 161건 시정요청에 대해 160건을 삭제했고 올해에도 78건의 시정요구에 대해 77건을 삭제했다. 방심위는 현재 성범죄 모니터링 인력을 6명에서 12명으로 늘린 상태다.

방심위의 대응 강화는 필요하지만 방심위에선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무한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통신 영역을 모니터링 인력을 증원한다고 해서 모두 심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온라인 표현물은 언제든 없어질 수가 있다. 특히 텔레그램은 다른 플랫폼보다도 '방 폭파'가 쉬워 신고가 들어오거나 모니터링을 해도 심의 후 차단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피해자 신고 등이 방심위에 접수되기 전에 수사기관이 인지 후 바로 콘텐츠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방심위 관계자는 “그건 검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지금 방심위가 24시간 전자심의하고 자체 판단에 따라 사업자에 자율 규제 요청을 먼저 하기도 하는데 그것보다 빠르긴 어렵다”고 했다.

▲ 사진=pixabay

방심위나 학계에서 큰 이견이 나오지 않는 대책은 '성범죄 처벌 강화'다. 현행법에 따르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허위영상물'(불법합성물) 유포 혐의는 징역 최대 5년(불법촬영물은 7년)인데 허위영상물을 제작하더라도 '반포' 목적이 없다고 인정되면 아예 처벌되지 않는다. 단순 소지·저장·시청하는 행위로 위법 판단을 받는 불법촬영물과 허위영상물은 법리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진짜 대책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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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교수는 “허위라 하더라도 한 번 퍼지고 나면 당사자한테는 씻을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생기는 것”이라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지금도 몰수 규정은 있지만 이를 강화해 수익 등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 돼야 원천적인 차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 피해가 심각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사이버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7∼8월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물 9만 5820건을 분석한 결과 등장하는 개인 중 53%가 한국인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가수와 배우 등 연예인이었고 WSJ는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임을 시사한다”고 했다. 영국 법무부는 지난 4월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들기만 해도 유포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딥페이크, 텔레그램 등 기술용어에 집착하지 마시고 목표를 '디지털성범죄, 그중에서도 특히 아동성범죄를 근절시킨다'로 잡아야 한다”며 “'텔레그램과의 핫채널 구축' 등은 요원하면서도 효과가 확실치 않다. 위장수사의 허용범위를 아동성범죄에서 디지털 성범죄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의 강경한 플랫폼 규제는 어려워도 자율규제 협조 요청이나 해외 사업자 간 공조 체계 마련 등 당국이 노력할 필요는 있다.

방심위는 지난달 29일 프랑스 당국에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긴급 공조 요청을 보냈다고 밝혔다. 최경진 교수는 “해외 기업이라 하더라도 공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아무리 구글이 법 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20년 전 처음 들어왔을 때랑 비교하면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도 불법적인 걸 방치하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기 때문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2019년 n번방 사건 무렵부터 이메일을 찾아 협조 요청을 했는데 한 번도 회신이 온 적은 없다. 다만 전체 대화방에서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한 것만 지워지는 케이스를 다수 확인해 시정요구가 수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텔레그램 CEO가 프랑스 현지에서 체포됐으니 이번 기회에 공조 라인이 마련된다면 획기적인 성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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